기영이 공처럼 동글동글한 우리 박박머리들은 공부야 뒷전, 쉬는 시간에도 공을 찬다. 학과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부리나케 운동장으로 쫓아나갔다. 골대를 한 면만 쓰므로 우리말고도 서너 팀이 뒤엉켜 분주하다. 소리치며 이리저리 휘저었다. 어느 순간 공이 내게로 흘러와 발을 쭉 뻗었다. 공.. 發憤抒情 2016.03.10
우리가 나무였을 때 "영수도 와야지.....!" 쑥덕거리면서 다들 문쪽에 시선을 둔다. '영수가 누구지?' 보면 알겠지만 되짚어도 감감하다. 익숙한 이름이나 얼굴은 지나친 습관까지 소상히 기억하면서 왜 어떤 부분은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린 바늘처럼 기억의 흔적도 없을까. 오랜만에 만난 동무들이 차츰 옛이.. 發憤抒情 2015.10.23
길찾기 방과 후에 정구를 따라간다. 지지리 못사는 동네여서 언덕받이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구네 집은 제법 선선한 바람도 든다. 눈을 씻고 찾아도 낮엔 어른을 볼 수 없다. 더러 거친 행세를 하는 형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툭툭' 치고 간다. 괜히 .. 發憤抒情 2015.08.13
그 여름 속 서둘러 온 식구가 집을 나섰다. 근교에서 물놀이라도 할 참이다. 먹을 음식과 옷가지 등을 보퉁이에 싸들고 버스에 오른 다음에야 소풍 간다는 게 실감난다. 맞바람을 받아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버스가 부르르 떨릴 때마다 매캐한 배기가스가 진동한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 發憤抒情 2015.07.09
우리 겨울 큰외삼촌이 집에 왔다. 심부름으로 술 한 주전자를 사 온다. 교자상에 술과 간단한 다과를 차려냈는데, 드시는 동안 지나는 인사치레 두어 마디가 고작이다. 작은외삼촌과 마찬가지로 교직에 있었는데, 식구들이 모여 와글거릴 때에도 한켠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분이다. 지나다 들.. 發憤抒情 2015.03.13
눈사태 이 길을 따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길이 끝나는 곳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길이 길로 이어져 돌아오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전신주에서 전신주까지 구간을 정해 세듯 걸었다. 구름이 어느 순간 빠르게 움직였다. 내 걸음도 자연히 빨라졌다. 희끗한 눈발이 비치기 시.. 發憤抒情 2015.03.04
악동들의 노래 '너 병준이 알지?' '응, 걔가 왜?' '화단에서 제법 알아주는 편이더만.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인제 붓을 잡을 수 없다더라.' 자기 소질을 알아채고 본능적으로 따라간 병준이. 어느 때 집 쪽방에서 나와 반기던 홀어머니가 떠올랐다. 사회 초년 시절 볼일이 있어 대학 캠퍼스에 다니러 갔다가.. 發憤抒情 2015.01.28
그 감나무 아래 서면 어른들이 촌수를 따져 서열을 정해 주었는데, 나이가 어리거나 동갑나기여도 아재나 이모라기에 어안이 벙벙하다. 호칭이 쉬이 나올 수 있어야지. 또, 나이가 많아 어른인데도 조카뻘이라며 하대해야 한다니 우습기도 하다. 북새통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채인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 發憤抒情 2014.10.21
젤리사탕 맛 합승종점보다 더 들어가야 하던 학교는 전교생이 육천 명을 넘나들었다. 수업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져 있어 정오 무렵이면 운동장에 아이들이 들끓었는데, 곳곳에서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다. 이분이가 학교에 젤리사탕을 갖고 와서는 하나씩 나눠준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달라.. 發憤抒情 2014.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