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마당

구하라, 그리하면

*garden 2008. 12. 12. 10:49



아버지는 비교적 크지 않은 덩치에도 걸음걸이가 확연했다. 골목 어귀에 드는 낌새부터 우리 식구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짧고 무거운 걸음. 밤이 사방에서 조여드는 것을 느끼던 우리가 몸을 일으킨다. 평소 말씀 없으신 아버지가 인기 있는 것은 이런 저녁답. 손에 들린 군것질거리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대문을 열어드리면서 내게 건네진 사탕봉투는 결국은 어머니께 주어진다. 여기에 대해 이의가 없는 것은 비교적 공평하게 어머니가 사탕을 나눠주기 때문. 사탕을 빠드득거리며 우리는 아버지 주변에서 와글와글했다. 단맛이 겨울밤 아랫목 열기처럼 혼곤하게 퍼진다.
나중 제 몫의 사탕을 다 먹어치운 여동생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다가 내 사탕을 달라고 징징댄다. 어머니는 내 손에 사탕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동생에게 하나 주라고 을렀다. 아껴서 먹는 중이었는데. 이런 게 싫다. 허나 어머니는 한 번 꺼낸 말을 거둬들이지 않는다. 형으로서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 내일 다른 맛있는 것을 사 주마 등의 공수표에 어쩔 수 없이 건넨 내 사탕. 눈물 자국 덕지덕지한 동생이 비로소 만족한 듯 입 안 사탕을 쪽쪽 빤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헤벌쭉 웃으며.
다음 날 문간에서 아버지를 배웅하는 참에 슬쩍 내 손에 쥐어진 동전 하나가 어젯밤의 서운함을 지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자라며 내 몫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많고 적음에 대한 비교는 해 볼 수 있을지언정. 나중에는 이도 무의미했다. 기다리며 순응하면 자연히 몫이 돌아온다고 믿기에 아귀다툼의 난전에서는 아예 물러나 있곤 했다.
때로 동생은 투정을 많이 했다. 결국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동생의 투정을 재우기 위해 어머니는 동생 손에 가외의 것을 쥐어주기도 한다. 서운한 감이 없지 않지만, 어른이 하시는 일이기에 눈을 감아야 한다.
도처에서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아우성이 분출하는 때이다. 어떤 이는 한아름을 안고도 채워지지 않아 투정 아닌 투쟁을 일삼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 내게 모자라는 것이 어떤 것이던가를 손꼽아 보다가 투정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허나 이제 와 누구에게 무엇을 더 달라고 투정을 부릴 수 있을건가.












Gabriel Prokofiev Winter Bonfire Op 122 Waltz on the 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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