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는 이월

*garden 2010. 2. 23. 10:52




간당간당하는 겨울. 와중에 비 오고 눈도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열렸다. 방과 후 학교 운동장에 머문 아이들처럼 결진 구름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다.
바스라질 것 같던 나뭇가지가 물기를 머금어 힘겨운 날. 수업을 마치고 와 대청에 책가방을 던져두면 비로소 해방되어 홀가분하다. 그냥 무너져 내려도 누가 간섭할 이 있어야지. 선생님 앞에서 쭈볏거리던 부자연스러운 동작도 지우고, 아이들과 뛰놀던 자유분방함도 내동댕이 친 조무래기 표정이라도 일순 심각하다. 마루 틈새가 벌어져 한기가 오른다. 달팽이처럼 웅크려 볼까. 골목 적요를 깨는 엿장수 가위질 소리가 요란하다. 못들은 체 하자. 다락을 뒤져 헌책 나부랭이라도 내리는 게 귀찮기만 해서. 대신 아까부터 '꼬르륵' 소리가 나도록 쥐어짜는 허기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매일처럼 술에 절어서야 들어오시는 아버지 속풀이를 위해서인지, 아침상에 오른 대구탕이 생각난다. 수반에 쟁여 둔 미나리가 여린 손을 치벋어 하늘거린다. 옹아리를 입에 문 동생이 아등바등 기어와 고사리손으로 방바닥을 두드린다. 아버지가 젓가락으로 벼린 대구 살을 입에 넣어주는 데 갓난 젓니가 유난히 드러난다. 무슨 맛인지, 밋밋한 대구 속살을 어찌 즐기는 걸까. 이월이 엿장수 가위질처럼 멀어진다.


회돌이쳐 맞은 월요일 아침, 회의를 하다 말고 큰소리가 난다. 휴일에 한겨울을 온전히 넘기지 못한 팀원 조모 상이 있었다. 바깥에서 활동하느라 전갈을 못했더니, 예순을 훌쩍 넘겨서도 힘센 커리어우먼이고 싶은 상사가 노발대발한다. 분위기 고취를 위해서인지 빨갛게 단장하고 온 당신을 망신시키기 위해 작정을 했느냐는데, 회의에 참석한 팀장들이 전전긍긍한다. 이런저런 핑게로 점심때에는 함께 나앉아 대구탕을 시켰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머금고 지난 시간을 음미한다. 입춘 절기에 우수도 지났으니 바야흐로 봄이지 않은가. 동지가 지나면 자연스레 대구 맛이 떨어진댔다. 그 때처럼 대구철이어도 잡히지도 않는 대구. 습관처럼 맛 없는 대구탕을 시켜 먹었다. 말갛게 우린 국물이 알싸했으면 더욱 좋을 텐데.
월중 설까지 끼어 있어 제대로 매조지 못한 일과가 벅차다.
휴일에는 힘겹게 산정에 올랐다. 짧은 해가 노랗게 제 영역을 다지다가 일찍 사윈다. 인적 드문 암릉까지 올라 눈밭을 헤집는 바지런한 참새들. 스스로를 녹인 눈이 바윗골을 타고 흐르다가 세상으로 내려올수록 차츰 큰줄기를 만들어 콸콸 소리를 낸다. 몽실몽실 부풀어 저절로 자라는 봄을 그렸다. 금술을 감싼 진홍빛의 환희. 몇 송이 열리지 않아도 곧잘 땅바닥에 드러눕는 남녘 동백 소식을 들었다.
해의 움직임을 보고 한 해를 정한 이집트의 태양력과 달의 움직임을 보고 한 달을 정한 메소포타미아의 태음력. 이를 아울러 놓은 로마인의 그레고리력에 바탕한 시간의 구분을 더듬었다. 들쑥날쑥 크기가 다른 가운데서도 유난히 덜 떨어진 아이처럼 애닯기만 한, 윤달이 돌아와도 겨우 이십구일밖에 안되는 이월. 안달하며 도둑괭이처럼 내빼는 이월이 어찌 이리 허무한가.












Chasing The Sun * Montana Skies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억을 깨우다  (0) 2010.03.02
지금 행복한가  (0) 2010.02.25
세 월  (0) 2010.02.16
수다로 살기   (0) 2010.02.05
호랭이가 버틴 고갯길   (0) 2010.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