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지금 행복한가

*garden 2010. 2. 25. 16:21




동네에서 나와 잘 어울리는 성집이. 골목에서 팽이돌리기나 딱지치기를 즐기거나 도랑에 나가 얼음지치기로 한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무언가 성에 차지 않아 앵돌아져선 노려보며 으르릉대기도 하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쫓아나가 어울렸다. 어느 때 이웃 동네에까지 가서 구슬을 갖고 노는데 낯선 아이가 다가왔다. 몇 대 맞고서는 가진 구슬 등을 모두 빼앗겼다. 우리는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치면서도 분해서 눈을 흘긴다. 그게 괘씸하다며 또 터졌다. 아, 약자의 설움이라니. 의기양양해 빙글거리는 덩치 큰 녀석의 싯누른 이를 보며 궁리한다. 머리로 치받아 버릴까. 통쾌하게 나가떨어지게 만들 수는 없을까. 거인처럼 순식간에 자라 나쁜 녀석을 찍어 누를 수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열 살이 되면 강해질 수 있을거야. 이런 녀석 쯤이야, 한방에 날려 본때를 보일 수 있을 텐데.
어느 때보다 이르게 귀가하신 아버지. 저녁상을 물리고는 안방에서 기침을 한다. 조심스레 갔더니 그렇지 않아도 부쩍 눈에 띄기 시작한 새치를 뽑으란다. 족집게로 고르다 보면 검은 머리카락이 뽑히기도 하지만 단정한 외모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당신에게 귀찮음은 나중 문제이다. 머리카락을 더듬는 중에 실눈을 뜨고선 내 심상찮은 표정을 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궁하는데. 콧물을 훌쩍이며 나는 당신 머리에 얼굴을 바짝 다가댄다. 어서 자라 열살이 되고 싶다면서. 어둑한 백열전등 불빛에 머리카락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쉽게 구별되지 않았다.
나중에는 세월을 건너뛰어 스무살이 되고 싶어 안달했으며, 친구들과 헤어진 어두운 골목길을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어가며 서른살이 빨리 되기를 문득문득 빌기도 했다. 매번 열살이나 스무살, 서른살이 되면 무언가 되어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이제 마흔도 넘고 쉰도 훌쩍 넘겼으니.


다음은 얼마 전 사진이다. 듬성듬성 빠졌지만 집안 아이들이 한데 모였다. 위는 조카들, 아래는 우리 둘째이다. 파릇파릇한 녀석들. 내게도 한때 그런 꽃다운 시기가 있었느니. 너희는 지금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지 모르지만 젊다는 자체로도 얼마나 좋으냐?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따지고 챙기다 보면 미처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해외 과학자들이 '가장 행복한 나이는 몇 살인가' 라는 주제로 조사를 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들 마흔 살까지는 체감하는 행복지수가 하락했다. 이후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일흔넷 정도에 정점을 이룬다고 했다. 이는 쫓김 받는 젊은 시절보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게 행복지수를 높이는 까닭이라고 했다. 경제적 안정을 이루거나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지운 것도 행복지수가 오르는 데 일조한다.
"행복하지요?"
"아니!"
무미건조하게 대꾸하고는 눈길을 돌려 하던 일에 빠져든다. 하지만 버스가 지난 뒤 생각의 손은 번쩍 들리기도 한다. 왜 행복하냐고 물어봤을까. 거기에 난 왜 행복하지 않다고 했을까. 행복을 느낄 여지가 어찌 그렇게 없는지. 아니면 안분지족이 사치인지도. 행복한 감정과는 담 쌓고 사는 게 외려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Wherever You Go * Frank M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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