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집에 들인 개 한 마리. 진돗개 혈통이라지만 글쎄. 화단 한쪽에 매어 둔다. 이건 순둥이여서 누가 와도 짖을 줄도 모르고. 하늘까지 닿은 떡갈나무 아래, 꼬리를 말고 숨 죽이고 있다가 담장 아래 노란 햇빛이라도 슬슬 내려오면 그제서야 주변 동정을 살피며 거동한다. 우선 앞다리를 쭈욱 벋어 기지개를 켜고, 턱주가리를 바닥에 비빈 다음 아가리를 한껏 벌려선 하품을 하고, 입 주변이나 아랫배 등을 혀로 샅샅이 훑고, 발등으로 눈가도 문지른다. 나폴거리는 나비라도 보면 목줄이 다하도록 쫓아가 뒷발로 서서 말을 건다.
"말 못하는 동물이라도 굶기진 말아야제."
어른 말씀 아니어도 슬며시 애태우던 중이었다. 음식 찌꺼기를 모아 가면 다가가기도 전부터 날뛴다. 자세를 낮추고 꼬리를 흔들며 주어진 끼니에 감사하여 킁킁거린다. 내가 멀찌감치 떨어진 기미라도 보이면 찌그러진 양푼이 깐죽거리다가 제풀에 엎어질 만큼 허겁지겁 달려든다. 주변 흩뜨러진 밥알 하나라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알뜰살뜰히 핥아먹는다. 상에 생선이라도 오른 날이면 주어지는, 살점 하나 없는 가시를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수고 씹는 모습이라니. 그런 모습이 가엾다. 화단 흙을 한 움큼씩 파대기도 하고, 심통난 내 발길질도 두말없이 받아가면서도 동그란 눈을 깔고선 숙명처럼 순종하는 영혼.
개교기념일 행사로 떠들썩한 학교. 전교생이 이십킬로 미터 단축마라톤을 하고 나눠주는 빵 하나씩을 받아간다. 작년에는 뜀박질이 싫은 반 친구들 꼬드김에 뒷무리에 어울렁더울렁 섞였는데 그게 고역이었다. 실없는 얘기로 킬킬거리는 것도 잠시, 가도가도 아득한 길에서 터덜거리다가 늘어지며 꼬이는 다리나 몸을 추스릴라치면 자전거로 쫓아 온 유도선생이랑 체육선생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헐떡헐떡 도망다니면서 이십킬로 미터를 재간 없이 꼬박 채웠으니. 다시는 그런 꼴을 당하지 말아야지. 재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거뜬히 등위에 들어 기분풀이 공책이라도 한 묶음 들고 가지 않았던가. 단거리라면 벅차지만 장거리에는 자신 있다. 어차피 뛰어야 하는 것,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싶은 오기가 치민다. 그래도 처지가 슬프다. 뛰라면 뛰고 들어가라면 들어가야 하는 자기주권 없는 신세가 우리 집 강아지 같아서. 자조하며 생각을 굴린다. 지난 다음엔 이 시간에 진정 유익했다고 점수를 듬뿍 줄 수 있을텐가. 단언하기 어렵지만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 같은 풀밭에서라도 소는 우유를 만들지만 뱀은 독을 만들지 않나. 어른은 늘 우리들 성급함을 나무라고 근심하셨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순응해라. 확대시키고 꼬투리를 잡아나가다 보면 나중 그게 다른 이 아닌 바로 자기 꼬투리로 남게 된다며.
쉬지 않고 달렸다. 끈적거리던 땀이 말라 입가를 훔칠 때마다 짭쪼롬하다. 목이 텁텁하다. 처지기 시작한 아이들은 맥없이 걷는다. 울며 겨자먹기라도 반환점을 돌아야 한다. 더러는 간신히 손을 들어 아는 체한다. 조금만 더 가야지. 앞쪽 뒤엉켜 뛰는 한 무리만 따라 잡자. 턱에 차오르는 숨. 팔동작을 간결하게 만들자. 어깻죽지나 옆구리에서부터 통증이 만들어지면 견디기 어렵다. 다리를 쭉쭉 벋자. 나름의 생존법칙에 따라 구령에 맞춰 어긋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오래 참고 견뎌야지. 사념만 많아진다. 분출 못한 욕망의 찌꺼기나 분노 들이 슬러지로 뭉쳐 발에 달라 붙는다. 무심하게 지나치려고 애썼다. 냉정하게 뿌리치고 편협하게 판단하며 지나친 갖가지 일이 살아나 형상으로 달려든다. 권투선수가 잽을 날리듯 주먹을 내질렀다. 그 바람에 균형을 잃어 휘청한다. 가도가도 이어지는 길. 뜀박질을 따라 벽돌을 가지런히 쌓기도 한다. 줄이 맞춰지면 그 위 다시 포개어 쌓고. 인제 주변 사물에 대한 의식도 없이 뛴다. 모퉁이를 꺾어들자 담이 높아진다. 내뱉은 숨이 벽에 부딪쳐 메아리진다. 걸음을 뗄수록 가슴이 묵직하다. 촉수를 벋어 담장을 타넘었지만 넘어가기도 전에 계절은 바뀌었다. 말라 붙은 채라도 견뎌야 할까. 파릇한 봄이 조금씩 드러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