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에 관심을 쏟는 중에 듣는 영화 오래보기 시합. 별 게 다 있네. 이번이 두 번째라는 데 육만여 명이나 응모했다. 예심을 통과한 이백이십팔 명이 참가하여 최종 네 명이 서른다섯 편까지 관람하기를 겨뤄(?)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다고 한다. 당연히 70시간51분18초의 한국공인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이 부문 세계기록은 120시간23분이란다. 성적 좋은 친구들이 성냥개비를 꺾어 눈꺼풀 사이에 받히고 밤 새워 공부했다는 우스개가 있더라니, 실로 거기 버금가는 참음과 끈기의 산물이기에 놀랍다. 기록 수립자들이 관람한 영화에 대한 서술을 어떻게 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미 본 영화를 껴안고 딩굴기에는 나도 일가견이 있다. 어릴 적 영화관에서 한 번만 보고 나오는 게 아쉬워 주저앉은 채 보고 또 본 적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영화 오래보기 시합이 예전에도 있었다면 틀림없이 주변에서 내게도 출전을 권유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 보기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테지만 무작위로 주어진 영화를 의무적으로 관람하는 일이라면 자신 없다. 가슴에 채우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허무한 게 또 있을까.
'그 영화를 또 봐요?'
'다시 봐도 재미있어.'
비디오나 유선으로 재탕삼탕하는 영화를 붙잡고 있다. 줄거리에 심취해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친 복선이나 절제된 대화를 되씹고 복구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아, 눈물 글썽글썽한 표정이 저기서 바뀌었지. 이전 장면과 오버랩되며 장소가 바뀌는 것도 괜찮아. 가만, 이건 촬영기법이 독특해 등.....'
주오일제면 몸이나 마음이 편안해져야 제격인데, 정작 딴판이다. 거기에 어떤 때는 엉거주춤하여 이도저도 아닌 적도 있다. 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지 않아 허겁지겁 쫓아나간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쯤에는 마지못하더라도 일어나야 한다. 게슴츠레한 아빠 모습을 보이는 게 좋을 리 없다. 거실 커튼을 걷고 턴테이블에 LP 판이라도 올릴 겸 뒤적이다가 꺼낸 모짜르트. 모건 프리먼과 팀 로빈스의 열연이 돋보이던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을 떠올린다. 감옥 소장인 노튼 역으로 나오던 밥 건튼의 눈빛도 괜찮았지. 아내와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앤디 듀프레인이 종신형을 선고 받고 악질범들만 수용하는 쇼생크에 오기까지 숨돌릴 겨를 없이 일사천리로 얘기가 진행되었다가 비로소 나오던 음악. 장면 이전까진 의도적으로 효과음향까지 배제한 걸로 알고 있다. 장면 중 외부에서 기증 받은 서적을 정리하던 앤디가 모짜르트를 손에 잡고는, 충동적으로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확성기를 통하여 바깥까지 들리도록 판을 틀어 놓는다. 무지막지한 죄수들과 난무하는 폭력, 이를 억제하기 위한 또다른 억압과 폭력이 도사린 감옥을 둘러싼 철망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Che soave zeffiretto)가 새처럼 자유자재로 노니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있던 긴장이 해제된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짜릿할 정도로. 그 순간 레드로 나온 모건 프리먼의 해설성 독백도 인상적이다.
어떤 것들은 모르는 채 있는 것이 최상인, 너무 아름다워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로 인해 가슴이 저려오는, 갇힌 아름다운 새가 새장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우리 모두가 자유를 느꼈다는 독백.
모짜르트의 오페라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는 '피가로의 결혼' 은 프랑스 작가 보마르쉐의 풍자적 희극 '세빌리아의 이발사' 속편이다. '포근한 산들바람아(Che soave zeffiretto)' 는 여자로서 느끼는 섬세한 감정 표현이 부각되어, '나비는 더이상 못날으리(Non piu an drai)',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나?(Voi che sapete)' 등 주옥같은 여타 아리아보다 은연중 돋보인다. 나직하고 평화로운 현악기와 목관악기 들의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백작부인과 하녀의 친밀감을 아우르는 우정의 노래이다. 알마비바가 한 구절씩 생각해내면 이를 스잔나가 편지지에 적는 형식으로 두 번씩 가사가 반복된다.
Che soave zeffiretto questa sera spirera 포근한 산들바람이 오늘 밤 불어오네
Sotto I pini del boschetto Ei gia il resto capira 숲의 소나무 아래 나머지는 그가 알 거야
Canzonetta sull`aria Che soave zeffiretto 소리 맞춰 노래해, 포근한 산들바람아
참고로, 영화 '쇼생크 탈출'은 따놓은 당상이라던 1995년 제67회 아카데미상 일곱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Forrest Gump 에 밀려 한 부문도 수상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Mozart, Le Nozze Di Figaro, Che Soave Zeffiret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