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에서의 바다. 절대 낭만적이지 않다. 어디나 길이지만 길이 아니고, 간구를 이어도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가끔 누군가를 그리지만 헛헛하다. 속절없이 웃고 싶어도 웃음도 나지 않는다. 엇박자로 노는 바다. 권태가 줄줄이 일어나 온몸을 꽁꽁 동여매지를 않나. 하늘마저 덮을 절망의 기세가 무섭게 배 난간을 때리기도 한다. 와중에도 열강의 땅찾기와 탐욕은 그치지 않아 곧잘 사람들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그 바람에 바닷바람 소금끼로 허옇게 절인 후각을 쓰다듬던 수부가 수평선상에 떠있는 거북 행렬을 발견하는 순간 눈을 끔벅였겠지. 곧바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기대를 부풀리며 해변에 오른 스페인 뱃꾼들을 마중한 것은 수많은 거북이었다. 곧추세워진 말안장 닮은 거북의 등껍질을 보고 누군가 소리친다. '갈라파고!' 고대 스페인어로 말안장을 가리키는 '갈라파고'가 바로 이름이 되었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네 개의 해류가 만나 기름진 바다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곳에 모인 열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지며, 이를 바탕으로 물속이나 땅, 공중에 갖가지 생물이 서식한다. 제각각 고유한 자연생태환경을 가진 섬마다 부리가 활동에 맞게 진화한 새 피치가 있다. 이 피치야말로 갈라파고스 제도를 진화론의 무대로 이끈 열쇠였다.
거북이만(Bahia Tortuga)으로 유명한 산타크루즈 섬에 있는 다윈센터는 진화론의 찰스 다윈을 기리는 동시에 갈라파고스의 생태환경을 연구하고 널리 홍보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현안 중 하나는 지구상 서식 육지거북 중 가장 크고 오래 사는 갈라파고스코끼리거북의 종을 보존하는 일이다. 그중 핀타섬에서 옮겨진 핀타종 거북의 마지막 개체인 론섬 조지(Lonesome George)는 현재 약 백오십 살 정도로 추정된다. 진작 섬에 상륙했던 해적이나 포경선원들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들이 풀어 놓은 염소가 섬에 있던 풀을 다 뜯어먹어 굶주린 채 홀로 방황하던 중 발견되어 옮겨졌다. 보존, 유지를 위해 면밀히 같은 종을 찾았지만 실패했다. 결국 비슷한 유전자를 보유한 인근 섬의 암컷을 두 마리나 붙여 주었지만 웬일인지 거부한 론섬 조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지워진 운명을 천형으로 알고 묵언수행을 하려는 건지, 묵묵히 견디는지라 지근거리에서 이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론섬 조지처럼 절대고독과 더불어 살아야 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이 있을까.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다. 휴일이라 핑게대고 내칠 수도 없는 게, 서울 양재동에서 치른다는 데에야 가봐야지. 겸사겸사해서 오랜 동안 만날 수 없던 친구들과 조우하기를 바라며 기꺼운 걸음을 한다. 이르게 도착해서는 두리번거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친다. 돌아봤더니 금새 여기저기 보이는 반가운 얼굴들. 예식장 앞 빨간색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아아~. 서울 나들이라며 말끔히 차려 입은 건가. 정장이나 새옷에 단정한 머리와 반짝이는 구두하며 우선 보기야 좋다. '머리카락이 네처럼 보기 좋게 희끗하다면야 염색이나 하겠냐?'면서 입을 모으는데. 낯선 얼굴도 보이지만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아도 금새 익숙해져, 성치 못한 잇몸과 이를 드러내고서는 수십 년 저쪽에서 쫓아나와 순한 웃음을 짓는 아이들.
"그래도 아직 마음은 청춘이다 아이가."
수줍은 척 고개를 꼬는 정희를 슬쩍 안았더니 옆구리 살이 많다며 호들갑이다. 몇 년 전 술집에서 만날 적보다 두 배는 늙어버린 병철이. 꿋꿋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는 기정이. 어느새 덜컥 손녀를 안고는 한결 자애로워진 태순이. 서로를 보듬으며 웅성거리지만 알 수 있다. 하얀 찔레꽃 향기가 진동한들, 담장 아래 핀 접시꽃이 유난히 붉은들 제대로 보기나 했나. 거침없이 달려나가다가는 어느새 세월을 따르지 못해 뒤쳐졌지. 호기를 보이지만 겁먹은 모습이 보인다. 여행을 가면 꼭 몇몇 녀석이 없어져서 속을 끓이더니, 예식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지를 않나. 모여서 식사를 하고는 관광버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다소곳한 모습이 어째 서글프다.
볼 적마다 미덥지 못해 잔소리를 덧붙이는 아들이지만 결혼시킨 경화에게 축하를 보낸다. 너희들이 돌아간 뒤에 몇몇이 맥주집에 들어갔다. 손에 물도 묻히지 않고 자란 소영이. 사업을 정리하고 보증을 선 남편까지 곤란하게 했다며 씁쓸하게 웃더니, 비로소 편안해졌다며 고운 미소를 흘린다. 어제까지 병원에 근무했다는 경자. 이제 자유인이라며 서울 언니라도 보고 가겠다며 남았다. 성원아, 전원주택을 지었다더니 주변 손댈 곳이 지천인지 새까맣게 탔구나. 애들 엄마 비위 맞추기 힘들지? 가까이 있으니 가끔 올라와 술잔이라도 마주치자꾸나. 그래도 아직은 회사가 좋은 방패막이라, 나중 술값까지 말끔히 치른 종흥아, 고맙다. 바쁜 데도 불구하고 달려온 정권아, 자주 보자.
론섬 조지처럼 남은 시간을 우두커니 견뎌야 하는 것이 막막하게 여겨지더니, 아직은 너희들이라도 있어 든든한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