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쪄 예전같지 않은 친구. 변화라도 주려는지 콧수염을 기른다. 간선도로 건너 인근 집에 다녀가기를 고대하는지라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설치는 우리 꼬마를 진작 알고 있다. 그집 여자애가 내 무릎에 담빡 올라앉아 고사리손으로 귓볼을 당기며 속엣말을 전한다. 말랑말랑한 옆구리를 간지르니 깨득깨득 소리내며 몸을 비튼다. 아찌네 도착 전에 손에 닿을 만한 자리에 있던 장남감을 안보이는 곳으로 몽땅 치웠다나. 그래도 미처 감추지 못한 장난감이 서랍장 위 있다. 이를 발견한 눈치 없는 우리 꼬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징징댄다. 참한 친구 아내가 곤혹스러워하는 남편을 못본 체하고 내준다. 딸만 둘이라, 나대기만 하는 아이가 성가신 눈치이다. 친구 녀석을 툭 쳐서는 주의를 환기시킨다.
퇴근때면 장난감가게에 들러 꼬마레고 세트를 사 나른다. 단품으로 이루어져 경찰차나 소방차, 심지어는 탑차나 기중기, 불도저 등 종류가 수십 가지이다. 안타까운 건 아이 손에서 견디지 못한다. 뜯어서는 이로 깨물어 조합되지 못하거나 바퀴가 떨어지고 조각이 멸실되어 완성품이 뭉그러지기 예사이다. 결국 똑같은 걸 두 벌씩 산다. 갖고 논 다음 없어진 조각을 다른 세트에서 찾아 끼우는 작업을 되풀이한다. 그게 한심스러운가. 옆에서 혀를 찬다. '엉뚱한 일에 애상을 둔다'고. 나도 얼버무린다. '어, 그러게 말야.'
아이 장난감을 최소한은 남겨 어느 때 거기 묻힌 추억이라도 되새기게 해주고 싶은데 표현은 옹색하다. 친구 녀석 아이들은 만지지 말라면 손대지 않는다고 했다. 책장 위에 가득한 조립용 장난감이 아이 놀잇감이 아니고 시선 만족용으로 진열해 두는 성 싶다.
아이들과 함께 쓰는 컴퓨터. 부팅하면 짜증부터 인다. 온갖 게임이나 채팅창을 통해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는 작업들. 정리한들 한주를 채 넘기지 못했다. 별도 컴퓨터를 사 둔들 소용 있을까.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통에 시끄럽기도 하다. 개인적인 일은 아예 집에 둘이지 말아야지. 손을 빼니 이방인이 된 듯 무료하다. 어머니는 아버지더러 하숙생과 진배없다고 툴툴거리셨다. 딱히 당신도 토를 달거나 변명 거리조차 꺼내지 않았으니, 지금 내가 그짝이다. 여기저기 보이는 가전제품. 두문냉장고에 김치냉장고, 에어컨에 드럼세탁기, 전자렌지에 가스렌지 등은 아예 작동시키는 게 서투르고. 그나마 리모컨으로 티브이나 켜지만 이도 식구들이 달라붙으면 물러나 앉는다. 집 안 물건들이 왜 이리 낯선지. 심지어는 장롱이나 서랍장에서도 익숙한 건 드물다. 사태라도 내려는가. 칸마다 가득 채워둔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오늘은 이걸, 내일은 저걸 사겠다고 별르고 있으니. 나중 필요한 걸 찾으려면 챙겨 둔 자리조차 가물거리지 않을까. 각기 영역을 따진다면 대체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어머니는 툇마루 앞 장독대에서만 행복한 표정이었다. 볕 잘들어 숨을 쉬면 가슴이 트였다. 갖가지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이 재글재글 익어가는 소리로 노래한다. 잔잔한 채송화가 열을 지어 선명한 색을 밝힌다. 볏을 짓물린 맨드라미가 조는 사이에서 봉숭화가 씨를 품는다. 과꽃이 쑥쑥 대를 키웠다.
어느 날 찾아간 옛집은 근방을 맴돌아도 흔적을 새기기 힘들었다. 우리 식구가 부대끼던 자리는 집과 집이 합해져 우람한 콘크리트 성채로 섰다. 성 안에서 나오던 공주 같은 예쁜 여자가 경계하듯 흘끔거린다. 그토록 자랑스럽던 어머니의 독은 비고 꽃은 시들었으며 마음은 빈약해졌다. 비빌 언덕인들 있어야지. 휑한 바람이 내 주변에서 일렁거렸다.
Mystic Heart * As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