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거꾸로 가는 시간

*garden 2010. 8. 17. 10:00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장의 부부젤라vuvuzela 소리처럼 끊이지 않는 매미울음. 소음으로 받아들이면 괴롭다. 허나 인고의 세월을 묵히고선 쫓아나와 순식간에 종족번식을 이루고는 생을 접어야 하는 조급증의 발현이라면. 여름 막바지의 애닯은 하소쯤으로 여기자. 그래야 낫겠지.


한여름 매미의 북새통은 저리 가라이다. 우리집도 늘 북적인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다가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이건 시장판도 아닌데, 왜 이리 어지러워?"
뒤죽박죽인 현관 신발하며 식탁 위 먹다 남은 인스턴트 음식 찌꺼기라니. 기척을 듣고 얼굴을 보이는 아이들. 그런데 뒤에 줄줄이 쫓아나오는 친구가 몇인가. 건성으로 인사를 받으면서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요는 일그러진 내 얼굴을 이녀석들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으니 어떡하나. 큰녀석을 찾아오는 친구들은 우리집이 자기네 아지트인양 구는데, 억지로 야박하게 굴 필요가 있겠느냐며 아이들 엄마가 끼니마다 잘 챙겨주는 통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에 질새라 작은녀석도 시위하듯 친구들을 끌고 와서는 난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한여름 손님이라더니 딱히 방도가 없다. 점잖게 타이른들 시큰둥하다가도 한이틀 지나면 다시 키득거리며 찾아드는데. 예전과 달라 몸이 성숙한 여자 아이들이 손바닥만한 천 조각만으로 가리고선 서슴없이 집 안을 활보하니 외려 내가 눈을 돌리기 일쑤이다. 오늘은 사달내야지. 큰소리로 다 쫓아버리고는 그제서야 훌훌 벗고 세면장에 든다. 내집에서마저 자유롭지 못해 속을 끓여야 하다니.
애들이 들끓다 보니 집안 물건도 남아나지 않았다. 정리해두면 엉클고, 여기 있던 게 저기 딩굴고 저기 있던 물건이 보이지 않다가는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다. 어떤 때에는 우리 아이는 보이지 않고 그 친구들만 컴퓨터 앞에서 웅성대는 적도 있으니 나원.


매주마다 주는 아이들 용돈으로 몇십만 원씩 새 돈을 찾아 두는데 이게 몇 번이나 없어졌다. 다그치니 우리 아이들 소행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남의 아이들을 무작정 몰아 의심할 수도 없다. 살펴보니 컬렉션으로 모아 둔 외화라든지 동전 등도 없어진 게 부지기수이다. 일단 출입을 막았다. 와중에도 몇몇 녀석들은 잊을만하면 불쑥불쑥 나타나 인사를 하는데 난감하다.
아내는 하나같이 착하고 어수룩한 큰애 친구들은 그럴 리 없다며 작은애 친구 중 하나라고 단정한다. 아닌게 아니라 여자애들이 암팡지다. 마주 웃어주면 이거야말로 어른을 갖고 놀려는 듯 달라붙는다.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지.


쓸 요량으로 얼마간의 돈을 찾아왔는데 두려니 당최 마땅한 곳이 없다. 궁리하다가 두꺼운 양장본 사이에 나눠 끼워서는 책 사이에 꽂는다. 막상 일이 닥쳐서는 엉뚱한 돈으로 메꾸고 책갈피에 넣어 둔 돈을 당분간 잊어버렸다. 회사일로 출장을 떠나게 되어 여비로 나온 일백 달러짜리 지폐 등과 환전한 돈을 장지갑에 넣어 구석진 곳에 올려 두었는데, 필요한 때 더듬으니 행방이 묘연하다. 이럴 리 없는데. 구석구석을 뒤진다. 그뿐이라면야 말이나 삼키지, 책꽂이에 돈을 넣어 둔 책까지 송두리째 비어 있으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잠든 아이들을 깨워 확인하고는 신고를 했다. 책장이라든지 책꽃이 등에 지문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의뢰한다. 곧바로 영화에서나 보던 치밀함과는 동떨어진, 과학수사대라는 조끼를 걸친 수사관들이 나와 지적하는 곳을 붓질하며 확인한다. 설령 찾지 못하더라도 이를 본 아이가 친구들에게 전해 경각심이야 가지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수사관들은 고개를 저으며 나앉았다. 증거를 찾지 못했다. 대신에 함께 온 책임자가 아이들과 면담을 원하고는, 따로 방에서 얘기를 나눈다. 나중 복도에서 내게 작은 목소리로 일르는데, 큰애가 어느 때 아빠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두어 번 꺼내서는 피자를 시켜 먹었다고 실토를 했다나. 작은아이도 모월모시에 돈을 꺼내 간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결국 애들 소행이라는데 입맛만 다신다. 누가 그걸 모르나. 덧붙이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험하지는 않다며 서둘러 수사를 종결시킨다.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여기에 아이들로 하여금 주눅들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대신 이러저러한 일의 경과를 지켜 보았으니 더 이상 저희도 집에 친구를 들일 일은 없을 게다. 그래도 거듭 당부하고 일일이 약속을 받아둔다.


얼마 뒤 일과중에 연락을 받았다. 아내가 외출했다 온 사이에 큰애 친구 하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찾아들어 라면까지 끓여먹고 있다는 데. 타일러서 내보내라고 해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겠단다. 허긴 키가 멀대같은 녀석과 마주 하여 억하심정으로 쫓아내려면 이는 마음속 공포도 짐작간다. 내가 일러 두겠다고 전화를 바꾸게 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그아이가 범인임을 통찰했다.
"두말하지 않으마. 일단 수사를 의뢰해 놓았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그동안에는 우리집에 발을 들여 놓지 마라."


이것저것 따지니 피해가 막심했다. 그애가 드나든 이삼년간 없어진 돈이 꽤 된다. 그것보다 그러한 일로 인해 불신하고 믿지 못하여 식구들에게 큰소리치며 색안경을 끼고 아이들을 보던 게 미안했다. 현금을 왜 두고 다니느냐고 옆에서 핀잔한다. 내 불찰이겠지만 세상에, 내집에 그 어떤 것을 두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 급하게 쓰일지도 모를 때까지 대비했었는데.
쫓겨난 아이 친구가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죄송하다며, 나중 벌어서 갚겠으니 집에 알리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이에 상관없이 아내는 그애 집에 전화를 했다. 안방 장롱 안에 넣어둔 금붙이나 보석류 등도 몽땅 없어졌는데, 알아보니 처분되었다고 한다.
한해 뒤 책장을 들어내다가 없던 장지갑을 찾아냈다. 그때 넣어 둔 외화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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