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대 오시는가

*garden 2010. 10. 26. 17:58











그녀가 온댔지. 삼단같은 머릿물결에 앉아 찰랑대던 햇빛. 웃음을 터뜨리면 억만 년을 견뎌온 동굴 속 종유석을 타고 내린 물 한 방울이 육십이일째 뚝! 떨어져 파동을 만들고 간섭하여 온 동굴을 휘젓던 것처럼 숲을 들뜨게 하던, 그녀가 온단다. 기별하여 작정하고 모였다.
그냥 있음 안되잖여?
그러게, 언제 오신다냐? 마중이라도 나가야지.
한꺼번에 다 가면야 좋겠지만 그럴 순 없고. 몇만 내보내. 나머지는 여그서 준비라도 해야지.
근데 어떻게 생겼나? 모습을 기억해낼 수가 없어.
오랜 시간이 지나 많이 변했을텐데.
그래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걸.
남정네들은 마른 풀자리처럼 꺼칠꺼칠한 턱수염을 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고, 여편네들은 입술을 뾰족하게 모으며 눈을 맞혔다.
아, 기다림은 벅차. 오늘 밤 제대로 잠이나 들 수 있을래나.
내일 일찍 모여 떠나기로 하지. 안산 돌재 너머까지 나서 보자구. 조바심나겄지만 늦어도 한이틀이면 오시겠지.


이슬 내린 풀섶. 젖지 않게 정강이를 단속한다. 바짓춤을 끌어올리며 어깨를 좌우로 흔들어 관절을 유연하게 만든다. 아직도 달빛 차박차박한 길, 나무 등걸을 타고 오르던 덩굴손이 어느 지점에선가 멈추고는 지난한 살이의 흔적을 되새긴다. 박달나무 가지 사이에 웅크린 새가 잠결인듯 날개를 보채다가는 무심코 나뭇결을 콩콩 쪼았다. 오롯한 걸음을 따라 일어나는 바람.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고 찢긴 풀꽃이 가녀린 고개를 들었다. 까무룩 가라앉아 있던 숲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 골마다 웅크린 구름이 슬금슬금 똬리를 튼다. 새벽 보랏빛이 희미해진다. 뒤이어 덧씌워지는 황금빛 햇살을 타고 지워지는 숲 그림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따라 귀를 기울인다. 지난 봄 꽃이 터뜨려지던 자리마다에서 아련하던 향기를 상기하며 눈을 감았다. 그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잰 걸음을 뗀다. 마른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은 햇빛이 속살거린다. 단장하지 않아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마음 편안해지는 웃음을 문득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무슨 말부터 건넬까. 아니다, 달려가 와락 부둥켜 안아야지. 수분을 지운 잎들이 신음한다. 나뭇결이 뒤틀리며 가지를 늘어뜨렸다. 거친 숨소리 자글대는 내를 건너자 산의 박동이 점점 커졌다.
지난 여름을 떠올렸다. 여기는 다른 세상이어서 계절이 익어가는 소리도 깊다. 무엇을 바라는가. 어디로 가는가. 누구를 기다리는가. 뭔가 이루어진 것처럼 마음속 빗장이 풀렸다. 물들고 물들이며 아우성치는 나무들처럼 우리도 손을 번쩍 들었다.









Whales Of Atlantis * Asch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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