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섬이라는 시간

*garden 2011. 4. 5. 10:28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곯았다

익히 아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일부분이다. 의도하지 않고 뭉뚱 그려내는 시금털털한 모습. 이게 읽을수록 맛이 좋다는 이에게 초를 치고 싶은 심보라니. 술에 취해 아무 데나 나동그라져 볼까.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간 남아나지 못한다. 막돼먹은 짓에 으레 따르는 타박이야 말할 것 없다. 가끔은 저런 글을 끄적이고 싶지만 이도 포기해야지. 실력을 논하기에 앞서 흠 잡힐 대목이 줄줄이 나온다. 가령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 없어질 때까지'라든지,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등에서는 거두절미하고 진위를 따지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게다. 쉽게 말하는 낭만이라고 내게 낭만일 수는 없다. 그러한 낱말은 도무지 낯설다. 선택이나 판단에 내 의지보다는 가까운 사람과의 이해 관계나 욱죔을 더 불편하게 생각해야 하다니.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와서는 이도 습성이 되어 버렸다. 날을 세우기보다 애써 무덤덤한 척할 수밖에. 대개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는 무인도에서의 생활이라고 했는데.

서울에 한번 다니러 가면 안될까요?
왜, 견디기 힘드냐?
여기 저말고 아무도 없어서요.
온들, 와서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느냐?
그냥이오.
지하철을 타듯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데가 아니잖느냐?

전화기 저편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 낯선 이국 땅에서 어느 때 울컥 이는 마음병인가. 혀 짧은 영어를 산비둘기처럼 꿍얼꿍얼 내는 솜씨로는 마음대로 나다니기도 힘들겠지. 변죽이 좋아야 어디서나 쉬이 적응할텐데. 그래도 어쩌냐? 받아들여야지. 익숙해져야겠지. 새로운 땅을 일구어서는, 씨를 고르고 뿌리는 걸 배워야지. 살이에 부대끼면 불현듯 떠올리던 무인도. 때로는 형체마저 모호하다. 혹여 가서는 몸이라도 눕힐 공간이라도 되어야지. 협소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견딜 수 없는 건, 무인도에 속해 있어도 세상에선 어찌 이를 알고는 찾아내 불러낸다. 이래서야 섬이 섬일 수 없다. 정작 바라는 나의 무인도는 어디에도 없다. 문득 아빠는 네가 부럽다. 오매불망 그리는 그 무인도에 가 있지 않느냐? 느긋하게 기다려라. 즐겨라. 아무도 찾을 수 없게끔 숨어 있어라. 돌아오기가 두려울 만큼 네가 하는 일에 빠져들어 보아라.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주마. 조만간 네게 찾아 갈 프라이데이에게 책이라도 몇 권 들려 보내 줄까.











Oystein Sevag, Painfu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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