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밭을 고르면서

*garden 2011. 4. 13. 11:15










쟤는 어땠어?
학교 다닐 적엔 대체로 두 부류잖어. 공부에 열중하는 녀석과 쌈질 잘하는 녀석으로. 어느 쪽이겠어?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 한 잔씩 들이키자 불콰하다. 개중 몇몇은 내내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사달이 난다. 옆에서 말려도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씩씩거리며 판을 뒤엎고는 일어났다.
저녀석 여전하네.
예전에도 그랬어? 술 깨면 계면쩍어 어쩔라나.
인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선악 투쟁이나 이념 투쟁, 계급 투쟁, 자유를 향한 투쟁, 심지어는 양성 간의 투쟁도 있다. 투쟁의 끝은 좋지 않다.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것도 씁쓸하다. 사람 사는 곳에서 으레 보는 쌈박질. 볼썽사납지만 그렇다고 그치지도 않는다. 때로는 다투는 사이에 정이 들기도 한다. 설마하니 그래서 싸움질을 일삼는 건 아니겠지.
운전중 차선을 변경했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어 차를 노상에 세워 둔 채 멱살잡이를 하는 사람들. 이웃집에서 기르는 개가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몇 년째 쌍방고소를 일삼는 사람들. 스님들은 패를 지어 절간 마당이 좁다며 쇠막대기를 휘두른다. 기독교인들은 용역까지 동원하여 예배당에서 발길질을 한다. 아참, 또 있다. 쌈박질이라면 정치꾼을 뻬놓을 수 없지. 걸핏하면 의사당 대회의실 문을 해머로 때려부신다. 상대가 싫으면 그 사람이 사용하는 책상에 올라가 공중부양을 일삼기도 한다. 다들 혀를 찬다. 세비로 사는 치들이. 지탄을 빌미로 이번에는 대변인을 내세워 말로 싸운다. 악랄하고 잔인한 말만을 골라 조롱을 일삼는다. 그래도 때가 되면 의사당 단상을 점거하겠다고 활극을 벌인다. 나라를 위한답시고, 국민을 위한답시며 잇속을 채우려고 혈안이 되어 싸운다. 격해지면 발단은 온데간데없이 말이 말을 물고 들어 오직 싸움만을 위한 싸움을 일삼기도 한다. 심야 끝장토론을 보노라면 쓴웃음이 절로 난다.
이런 때 이종 격투기장처럼 주먹으로 치고 받으며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싸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면 어떨까. 죽으라고 쫓아다니며 상대를 패고 또 얻어 맞다가는 그나마 해 저문 언덕배기에 지쳐 떨어져서는 하늘이라도 올려다 보던 건 낭만이다. 찝질하게 씹히는 피와 욱신거리던 통증에 찡그리며 달래던 분노와 각오 들이 보약이어야 하는데.


마블코믹스의 만화 캐릭터 중 헐크는 화가 나면 변한다. 한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는데, 선호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진지하게 본 적은 없다. 폐선의 선체나 커다란 몸집을 드러내다라는 뜻을 가진 hulk[hʌ́lk]로 변하고 싶을 만큼 나도 분노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을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매번 싸울 수야 없지.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경우와 맞닥뜨리더라도 참자. 그게 되풀이되어 불편해도 꾸욱 눌러 달래자. 어떤 응어리가 속에 뭉쳐 있다는 것이 심히 거북하지만서도.
지명知命을 넘어서야 땅을 내려다 보게 되었다. 흙을 손에 묻히자 어릴 적이 떠오른다. 근본이 여기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삽을 깊숙히 집어 넣어 흙을 뒤집으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앙금으로 남아 있던 분노 등을 헤뜨리듯 파헤쳤다. 어제의 싸움과 그제의 싸움과 그그제의 싸움을 떠올린다. 발단이야 사소하지만 요는 고집 때문이다. 나이 들면 고집만 공고해진다. 퇴비를 섞어 흙을 엎을수록 지난 시간의 냄새는 더 짙어졌다. 흙 속에 살던 땅거미나 벌레 들이 허둥지둥 쫓아 나왔다. 햇볕이 폭포처럼 콸콸 흘렀다.





James Galway & Cleo Laine, Consuelo's Love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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