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리도 북적일까. 꽃 구경 인파로 들끓는 여의도에서 약속 장소에 가다말고 비켜섰다. 다행히 넉넉하게 나왔기에 망정이지. 다들 몰려나왔나 보다. 일생에 봄은 오직 이번 뿐이라는 듯 소리치고 깔깔거리며 떠들썩하다. 여기저기 짝지어 떠다니는 섬들. 커다란 섬 하나가 다가온다. 이들 속에 몽글몽글 외로움을 새기는 이는 나뿐인가. 문득 누군가 팔을 잡아 이끈다. 돌아보니 조심스레 길을 묻는 부부에게 미씸쩍지만 방향을 가리켰다. 한참을 가다 말고 아차! 한다. 생각없이 반대 방향을 일러줬구나 싶어서. 콧등에 땀을 송글거리며 고운 미소를 띠던 아주머니와 뒤에서 꾸벅 머리 숙이던 키큰 아저씨를 떠올리며 종일 마음이 불편하다. 절대 억하심정으로 그런 건 아니었노라고, 꼭 변명하고 싶다.
어지러운 봄은 금방 부풀린 잡곡곰보빵 껍질 같고, 한해의 임금 인상 수준을 결정하다 결렬된 노사 협상으로 야기되는 춘투의 격렬함 같고, 애써 꽃잎을 열었다가는 하룻밤 새 난분분하니 떨어져 버리는 한줌 꿈 같은 날로 이어진다. 동해안 산간지방은 연이틀의 폭설에 덮였다. 십오 센티미터에 이어 다시금 십 센티미터 이상 내렸으니, 가히 춘설치고는 의외이다.
오래간만에 보는 친구 녀석은 투덜댄다. 가는 곳마다 쫓아나온 사람들에 휩쓸려 정신 없다고. 지난 번 휴일에 모처럼 식구들을 끌고 꽃 구경을 나갔더니 꽃은 커녕 길마다 고생만 했다며 너스레이다. 다른 녀석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등짝을 후려친다. 팔자 좋은 녀석이라느니, 너같은 녀석들이 마구 쫓아나오니 당연히 길이 밀리지 않느냐고. 이런저런 법석도 따지고 보면 봄앓이이겠지. 그저께 나는 작정하고 나서서는 산에 올랐다. 이것저것 챙겨넣은 배낭이 거북 등딱지 같다. 자연히 걸음도 엉기적거린다. 겨우내 주춤한 탓인가. 예전처럼 성급하게 후다닥 오르지 않고 등성이를 완만하게 돌아 쉬엄쉬엄 올랐다.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머릿속에서 동그랗다. 짧은 듯하다. 이를 늘여 길쭉하게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가 조금씩 멀어진다. 웅크린 나무마다 용을 쓴다. 새들이 뾰족한 울음을 마구 쏘았다. 흩뜨러지는 소리를 음표처럼 늘어놓고 더듬었다. 암컷이 품고 있을 따뜻한 생명을 그리자 마음 한쪽이 밝아졌다. 새 알이야말로 생명의 섭리라 했다. 타원형이라, 굴려도 굴려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회귀 본능이 새삼스럽다.
그렇게 흔들리며 깨어나 세상을 휘젓고서는 돌아왔다. 좋은 일만 생길 것 같던 날이어서 펄쩍펄쩍 뛰어다니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침잠해 있던 겨울이 오히려 그리운 건 왜인가.
S.E.N.S, W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