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무주, 눈에 붙여

*garden 2012. 2. 13. 17:24




바깥 돌쩌귀를 잡으면 맨살이 쩍쩍 들러붙던 시절. 겨울은 무섭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겨울이 그때만 못하다. 하지만 고산지대에 들어오면 일단 마음자세가 달라야 한다.
'철탑과 철탑 사이 거리가 상당히 멀어.'
규모에 놀라며 허공을 지나는 줄을 슬쩍 본다.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강선이라지만 저 굵기로 견딜 수 있을까. 여기 사람들 몸무게만 합해도 만만치 않을텐데. 조바심이야말로 기우다.
'놓칠새라 허겁지겁 올라타던 어설픈 자세들이 우스웠어.'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녹슨 쇳냄새를 품은 기계 마찰음이 들릴 때면 오금이 저리다. 그래도 천오백 미터 정상까지 단숨에 오른다.
한겨울 주말에 덕유산 곤돌라를 이용하려면 족히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한평도 안되는 박스 안에서 운신이라도 하려고 일어서면 흔들린다. 속이 울렁거리고 어질어질하다. 지금까지의 내 삶도 이렇지 않았던가. 간신히 매달려 흔들리며 지나온 날들. 멀어지는 곤돌라 정류장이 아래쪽으로 보인다. 길게 늘어선 인파가 개미 떼처럼 꼬물거린다. 여기선 왁자지껄하던 소음도 아예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귀가 먹먹하다. 발 아래 계곡을 덮은 얼음장과 눈사태. 집채 만한 바위도 넘고, 열병식을 하듯 곧게 뻗은 나무의 군락도 넘어 금새 구름 속으로 드는 우리. 신선이 따로 없다.

시린 뺨을 어루만지자 의외로 거칠다. 산 정상에서 맞는 바람이 차갑고 거센 탓이다. 중봉에서 백련사로 내려가는 산길에서 눈을 만났다. 솜덩이를 뭉친 듯 커다란 함박눈. 바람이 잦아든다. 비로소 펼쳐지는 겨울 풍광. 눈은 순식간에 발목까지 들이찼다. 눈밭에서 소멸과 생성을 떠올렸다. 메마른 등걸과 맨 가지만으로 버틴 나무들의 간절한 바람을 생각해내려고 애를 썼다. 겨울은 지난 날을 지운 듯하지만 실상은 모두 품고 있었다.
지난 여름 초입에도 무주구천동을 거닐었다. 그날의 계곡이 얼마나 푸르고 생기에 차 있던가. 넘쳐나는 물을 감당하지 못하던 소와 담. 콸콸 흘러내린 맑은 물이 사방을 휘저었다. 바위는 바위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물에 씻겨 선명함을 더했다. 바람이 지날 적마다 꽃으로 단장한 아그배나무와 야광나무, 귀룽나무 들이 손을 흔들었다. 하얀 꽃잎이 비처럼, 노래처럼 휘날렸다. 물은 쉼없이 꽃잎을 날라 향기가 진동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자 몸안 곳곳의 생채기에 새 살이 돋았다.
무주를 다녀간, 그 여름 밤에 집 안에서 넘어진 어른이 입원했다. 그리고 그 겨울 소담한 눈으로 덕유산이 하얗게 덮인 밤에 돌아가신 당신. 삶은 무상하여 거리낌없이 죽음과 맞닿았다.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 다시 무주를 찾았다. 산맥의 기상을 눈으로 더듬었다. 당신은 어디쯤 계신가. 머물렀는가 아니면 떠나셨는가. 가셨다면 그 길은 어땠는지. 꽃으로 뒤덮여 있던 여름과 눈꽃으로 치장한 겨울이 이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























Yanni, one Man's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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