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두운 이월 계곡

*garden 2012. 2. 20. 14:17




가끔 마음자리에 이는 헛헛한 바람. 내내 그치지 않던 바람은, 나중 이명으로까지 남아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자괴심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피폐하다고 느끼면 시장 바닥에 나가 보라던데, 시장도 시장 나름이다. 스키나 보드, 겨울산행을 즐기러 나온 인파로 들끓는 무주 덕유산리조트의 설천하우스는 가히 도떼기시장이다. 장터에서 뒤적이는 국은 멀겋고 초라하다. 아무리 행락 한철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대책 없는 장삿속이 판을 친다. 후룩후룩 소리나게 우거지해장국을 떠먹으며 짓는 우거지상이란.
'왜 이리 싱거워? 네맛 내맛도 없는 걸 구천 원씩이나 받는 작태하고는.'
돈까스를 선택한 일행이 있었지만 재료가 떨어졌다는 핑게로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다. 이제 겨우 정오인데 재료가 떨어지다니. 허긴 이 북새통에 뭔들 제대로일까. 일일히 따지는 건 피곤하다. 별 수 없이 같은 메뉴로 식판에 타서는 앉을 자리도 없는 군중 속을 서성였다. 눈치 없는 사람들이 어깨를 치고는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다. 그런 걸 진작 옆 식탁을 꿰찬 커플은 배낭이라든지 짐을 의자에 잔뜩 올려두고는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십분 이상을 버티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밉지나 않지. 웬 수다를 저리 그치지 않을까. 흐물흐물한 우거지를 입에 넣고 들리는 말까지 우걱우걱 씹었다. 옆에 사람이 있든 말든 손전화에 대고 뾰족한 언성을 키우면서 개인사를 줄줄 꿰어내는 입술은 붉고 앙증맞다. 밝은 바탕에 원색 무늬가 잔잔한 스키복장에 화려한 악세서리가 돋보이는 건 좋지만 언뜻 유아적 취향이지 않은가. 늘어놓는 말에 섞인 자만과 허영이 가소롭다.
'어 참, 누가 여기서 끼니를 때우자고 한 거야?'
짧은 이월은 시작되자 말자 끝날 기세이다. 무료함이나 공허함이 싫어 박차고 나왔더니, 조급증 탓이겠지만 짜증이 가실 줄 모른다.
'나 원, 곤돌라를 기다리는 시간에 끼니라도 해결할 겸 들렀더니.'
지나면 이도 추억이라 여기며 쓴웃음을 지우겠지만 도무지 유쾌한 표정일 수 없다. 아수라장을 헤집는 야차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섭다.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시처럼 어느 누군가의 탐욕과 향락과 무신경과 이기심이 범벅되어 총체적 무질서로 눈쌀을 찌푸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래서야 앞으로 살아갈 일이 문제이다. 영웅을 바라는 시대이지도 않지만 한줄기 사자후라도 내질러 이를 평정하고픈 엉뚱한 생각이 간절하니.

오수자굴로 떨어지는 산길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탈이 났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 길. 무리한 힘을 지속적으로 주며 내려오다 보니 나중에는 무릎이 아파 딛지 못한다.
'나이 들면 그래.'
저마다의 경험으로 위로하지만 남은 길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부축한들 견딜까. 또한 그걸 인정하여 받아들이기나 할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좁은 산길에 그늘이 짙다. 금방 어두워질 게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뚝한 길을 서로 간의 간격을 좁혀 걸었다. 설천하우스의 번잡함이 설천봉을 지나 향적봉에 오를때까지도 사그라들지 못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에 부대껴 혼란스럽더니 중봉으로 내려오며 조금씩 가셨다. 호젓해 적요가 견디기 힘들면 휘파랔이라도 불 참이었다. 인적 드문 외딴 곳에서 먹먹해지는 감정, 연민이 생성되었다.
'백련사까지만 가지.'
막연하게 기대한다.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니 수가 나지 않을까 하고. 뒤에서 쫓아온 많은 등산객이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쳤다. 일부러 큰소리로 일행을 위로하기도 하며 보조를 맞춘다. 눈 쌓인 계곡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길이 가끔 드러난다. 마름모꼴 무늬를 등걸에 새기며 자란 다릅나무를 들여다 보았다. 말없이 견디는 세월이 대견하다. 백련사 스님은 딱한 사정을 알고도 어쩌지 못한다. 눈길에 세워 둔 차량은 그야말로 만일을 위한 거다. 어쩌다 들러 사정을 늘어놓는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아니면 늘상 불만소리를 내뱉는 인내심 약한 이들의 소산 쯤으로 치부하는 걸까. 그렇다고 이대로 머물 수도 없는 일. 늦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 아픈 다리라도 끌고 갈 데까지 가봐야지. 구천동 계곡길이 비교적 평탄하여 그만하기 망정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는 걸음을 하나하나 세기도 하고, 알만 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거나 앞질러 가선 사정을 헤아리기도 하며 간신히 내려왔다. 진작 이주지역으로 소개된 주민들과 달리 송어장 주인은 구천동 계곡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정표처럼 따뜻한 불을 켜두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깜깜한 길을 내려오자 끊어진 대중교통마저 야속하다. 간신히 콜택시를 불러 차를 세워둔 무주리조트 주차장으로 왔는데, 주춤거리며 내리는 일행이 차가운 자동차에 다 올라타고 시동을 걸 때까지 전조등으로 비쳐주는 기사 마음 씀씀이가 그나마 고맙다. 산을 내려와 처음으로 차창 밖을 보았다. 총총한 별이 여기는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Loren Gold, F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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