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garden 2012. 3. 8. 17:52




고려말 명장이던 최영 말고 금(金)을 싫어하는 이 있을까. 금은 부식되지 않으며, 잘 퍼지거나 늘어나기도 해 진작부터 장신구나 화폐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금은 귀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를 쫓는 이들을 안달하게 만들었다. 무뚝뚝하고 독설을 예사로 일삼는 내게도 이쁜 구석이 있는지, 어느 때 기념식에서 덜컥 황금쇳대를 받았다. 심드렁한 나와 달리 입이 함지박만해지던 애들 엄마. 덕분에 한 며칠 집에선 잔소리가 뚝 끊어졌다. 요즘 금값이 예전 시세보다 너덧 배는 뛰었다. 그러다 보니 갓난아이들 백일이나 돌이면 으레 장만하던 금반지도 아찔한 얘기가 되고 말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을까. 동시대 뮤지션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닐 영(Neil Young)은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어(I wanna live I wanna give) 순수한 마음(Heart of gold)을 찾아 헤맨다고 했다. 우리는 금이나 보석처럼 세상 이치나 사물도 처음 접하던 그때처럼 그대로이기를 바란다. 허나 세상은 점점 변화의 소용돌이가 심하고 빨라져 인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으며, 거기 휩쓸리기를 마다하지 않던 나마저도 지금은 미처 좇지 못해 허우적거리다가는 이만큼 주저앉아 가쁜숨만 몰아쉬게 되었다. 감히 변화가 싫은 건가. 외면하면 멀어지기 일쑤이다. 차라리 지금은 옛것을 그리는 마음만 깊어져 지난 일을 끄집어 내기 시작하면 그만 한밤내 잠을 못이루기도 한다. 몇년 전까지도 만나기만 하면 '야, 너야말로 늙지 않는구나!' 하고 손을 덥썩 잡던 친구들이, '몇 년 사이에 흰머리와 주름이 이렇게 늘다니, 오는 세월 참 막을 수 없구나...'하며 지금은 이구동성으로 탄식한다. 어줍짢은 핑게로 어물어물 덧붙이는 녀석도 있다. '그래도 마음이야 예전 그대로이지.' 면박으로 어색함을 지우며 낄낄거리기도 하지만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유대의 끈보다 귀한 게 있을까. 여전한 사랑과 설레임, 순정 들을 간직한 채 늙고 풍상에 찌든 얼굴이라도 마주할 적이면 가슴 뭉클한 감정에 사로잡히는데, 이러한 우정은 사실 순금보다 더 반짝인다.


왕대부인은 처음 뵐 때부터 혼자였으므로 시시콜콜 따지지 않아도 과부이다. 홀로 늙는다는 건 서럽다. 다행히도 천성이 밝아 그런 내색이 없다. 아랫대에서 가정사를 좌지우지하므로 자연히 집안일과 무관하게 나앉아 있을 수밖에. 따지고 보면 즐비한 아랫대의 사람들마다 고집이 대단했다. 먹고 사는 일이 벅차 매달려 있다가도 만나면 고집끼리 맞부딪쳐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래도 파국만은 용케 피해갔다. 아랫사람들 목청 크기에 따라 어른은 이집에 기거하다가는 저집에 달포간 얹혀 있기도 했다. 마침 집안에 땅뙈기라도 있어 소일거리 삼아서라도 내내 농사일에 매달리지만 이마저 지속될 수 없다.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손자 녀석이 농지에 뭔가를 세워서는 철없는 시도를 한다. 못난 아들이야 진작 어지러운 도회로 내빼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을 모신 사위라든지 며느리 등은 절대 들녘에 나가는 법이 없다. 수확이라도 있을 참이면 구부정한 허리에 한짐 가득 이고 져 나르던 어른과 문득 마주치곤 했다. 치아가 부실하여 즐기는 국수나 묵이라도 차려내면 양재기째 입에 물고는 오물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막소주를 아흔 넘어서도 거뜬히 들이켰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 또한 별 것 아니다. 다시 만날 기약 없이 길을 떠나기도 하는 우리. 칼바람도 잦아들고, 마음 어지럽히는 화사한 때도 이른 환절기. 총총걸음으로 떠난 당신이 부디 영면의 길에서 욕심 없던 이승일랑 떨치시기를.











Frank Mills, Wherever You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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