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리운 독재자

*garden 2012. 3. 21. 17:32





운치 있게 자리잡은 아름드리 바위 소나무나 장인이 빚은 듯 오묘하게 솟은 화강암 벽도 지나친다.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오르는 길은 탁 트인 조망을 처음부터 열어주지는 않는다. 대신 따사로운 햇살이나 적요한 숲의 정경을 새길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들뜬 마음이 차츰 갈무리되었다. 무심코 나아가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길에서는 자칫 방향을 잃기 쉽다. 멋모르고 낙엽 수북한 북한산 뒤편을 헤매다가 염초봉 언저리까지 오른 적 있다. 사실은 상장능선쪽으로 건너 갈 참이었는데, 눈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우선 헤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진작 마음속에 선을 그었건만 어느 때 선을 벗어나고서 제때 조정치 못한 탓이다. 암벽 앞에서 난감하여 한참 머물러 있었다. 다시 내려오기는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휘이휘이 도는 중에 맞닥뜨리는 아찔한 절벽이 한둘일까.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오늘도 도중에 걸음을 되돌렸다. 영문 모르는 일행을 뿌리치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조바심으로 허겁지겁 쫓아가야 하는 나와 달리 버스가 달려올 적마다 쏟아붓는 인파는 재잘거리며 길 한가운데서 비키지 않았다.
근 이 년이나 개발한 상품을 위해 브로슈어나 안내지 등을 펴내 엊그제 각 지점으로 내려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활짝 열린 봄날의 산을 오르는 중이었는데, 맑은 공기와 숲의 향기, 바지런한 산새의 기척을 채 느끼지도 못했다. 터지지 않는 손전화가 몇 번이나 움찔거려 적잖이 거슬리는 중이었다. 모른 체하려다가는 그러지 못했다. 나중 사정을 알고서는 더 이상 오를 수 없다. 전화번호가 잘못 인쇄되어 엉뚱한 곳으로 이어진다는데 큰일이다. 가끔은 내 손전화도 엉뚱한 시간에 울린다. 이천 쯤의 ㅎ공장 안이라는데, 누군가 떠억하니 내 손전화번호를 올려 놓았는지 현금지급기가 고장이라는 둥 하소연으로 이어져 몇 번이나 아니라고 일러줘야 했다. 번거롭고 짜증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휴일을 핑게삼을 수 없다. 당장 처리방법이야 떠오르지 않아도 산행을 계속할 만큼 뻔뻔스럽지 않다. 오기로 나간 번호가 가정집이라 했다. 거기야말로 느닷없이 빗발치는 전화가 날벼락이다.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하면 될까. 사전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건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가만, 산 너머 산이라더니 인쇄물 양이 어마어마해 폐기할 수조차 없다. 스티커로 인쇄해서 덧붙일려고 해도 이왕 내보낸 걸 수거해야지. 마땅한 곳에 쌓아두고 작업을 할 만한 사람도 잔뜩 구해야 할텐데. 회사 윗선에 보고를 지나칠 수도 없고 말야.


남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조사대상 넷 중 셋이 회사에 히틀러 같은 독재자 유형이 있다고 했다. 또한, 다섯 중 넷 이상이 당연히 사내 정치가 존재하여 상사에게 잘보이려는 직원이 있다고 답했다. 아이러니는 사내 권력자가 싫지만 대다수 직장인이 권력자가 되기 위해 아부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독재라는 말만 나와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우리. 북아프리카의 작고 가난한 나라, 튀니지에서 이십삼년간의 장기 철권통치자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났던 '자스민 혁명'은 이웃 이집트와 리비아 등을 거쳐 지금에도 중동을 뒤흔들고 있으며, 마침내 아시아로 건너와 중국마저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처럼 독재자가 싫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나도 곧잘 독재자 행태로 세상과 맞선다. 우선 집에서는 강력한 가부장 제도를 확립하려고 불철주야 애쓰며, 이에 대항하려는 가족들의 행위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다를 바 없다. 권력에 맛들이면 독재를 포기할 수 없다. 더구나 독재를 행할수록 상황이 개차반되는 꼴을 안보려고 한다.
사내 중역 중 만만한 사람이 없다. 그중에서도 내 선에 이어진 중역이야말로 독재자 중의 독재자이다. 무표정함과 치켜드는 눈빛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중언부언 군말을 배제해야겠지. 요즘 심기가 불편한지, 내가 보이기라도 할라치면 시선부터 싸악 거두던데. 오늘처럼 해야 내일도 뜨겠지만 막상 부딪치려니 두렵다.


독재자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다듬어간다. 주변 말에 민감하다. 남의 말을 듣지만 스스로 정한 범주 밖의 말을 잘라버린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묻지만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상대가 민망할 정도로 되풀이하여 자기가 바라는 쪽으로 답을 유도한다. 늘어놓자면 끝이 없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피곤하다. 반면에 인간적이고 의리파이다. 슬픈 일 앞에서는 체면일랑 벗고서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을 줄 안다. 이제 일선에서 물러난 독재자. 하지만 그 독재자를 말할 때면 다들 배시시 웃음을 깨문다.















Michele Mclaughlin, A Tale Of Cou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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