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흔들리면서도

*garden 2012. 4. 25. 11:01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허나 어딘가 불편한 듯 여겨지는 건 나뿐인가. 운신이 원활하지 않아 은연중 답답함을 안고 가야 한다. 반면에 무미건조하던 창밖 풍경이야말로 차츰 현란해진다. 내내 통화중이던 옆자리 여자가 탄성을 지른다.
어머, 여긴 봄이 한창이야!
어렴풋이 감지하던 봄이 순식간에 만개한 속을 관통하는 시간여행의 맛. 기다리기보다 찾아나서야 한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곳곳에 있는 터널. 열차가 순식간에 들자 다들 흠칫하는 기색이다. 그제서야 알 수 있는 소음과 미세한 떨림. 덕분에 쉴새없이 늘어놓던 여자애 사생활도 지워지고, 대상 없이 일던 두근거림도 덮였다.


비 오는 휴일 한낮, 생맥주와 피자를 시켰더니 고속열차만큼 빠르게 달려와 초인종을 누른다. 피자를 받으며 돈을 건넨다. 물기 있는 배달부 손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악처럼 비장하다. 거기에 비해 거래는 간단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정해진, 습관성의 거래가 대부분일 게다. 복도에 일말의 소란스러움이 일어 나가봤더니 누군가 윗층에 이사 오는 모양이다. 물건을 끄는 소리와 아련한 외침이 뒤섞인다. 갓난아기를 안은 새댁과 이를 호위하듯 감싼 식구들을 까마득히 두고, 이십오 층까지도 거뜬히 오른다는 사다리차가 팔을 늘인다. 우중에 이사라니, 염려하다가 갸웃한다. 이런 날 이사하면 재물이 는다는 데 근거가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위로일까. 사다리차 팔이 허공에서 기우뚱거리다가 구층 쯤에서 멈췄다. 당황한 기사의 부산한 손놀림에도 불구하고 멈칫거리던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잉잉거리며 비를 휘저었다. 절정이던 꽃잎이 사방팔방으로 솟아올랐다.


흔들린다.
온힘을 다해 뿜어낸 생기가 흔들리고, 나중에는 삶의 형태가 흔들리다가 종내에 나무 그루터기까지 들썩일 참이다.
흔들리는 게 일상이다.
고속열차가 편치 못한 여자는 손전화로 동행을 불러내 내내 함께 갔다. 비 내리는 휴일에 이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새내기 부부는 애먼 하늘을 흘겨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다행인 건 손수 애쓰지 않아도 고생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더 이상 탈이 없기를 바랄 수밖에. 사람들 삶은 세대에 따라서도 천양지차이다. 받아들임이나 이해의 폭, 관점이 다르다. 나야말로 걱정스럽다. 진작 여기 붙박이로 놓이고서도 아직 정착하지 못하여 엉거주춤한다.
때로는 물가에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비추어 볼 참이다. 그렇게 흔들리면서도 견딘다는 걸 깨닫게끔.















 

21802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여름 가을 겨울  (0) 2012.05.09
숲에서  (0) 2012.05.03
봄이  (0) 2012.04.20
열린 저녁의 일  (0) 2012.04.17
봄날 아우성  (0) 2012.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