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밀리는 구간도 아닌데, 아침부터 웬 일이지?'
멈칫거리던 차들이 꼬리를 물고 부르릉댄다. 찌는 더위가 맞물려 아예 아스팔트부터 녹일 참이다. 대나무 마디를 깎아 길게 이어 만들던, 어릴 적 갖고 놀던 장난감 뱀처럼 줄에 균열이 진다. 슬금슬금 차선을 바꾸었더니 저만큼 엉킨 차들. 간밤 꿈처럼 심사가 어지러운가. 건장한 남자 둘이 도로 한가운데를 막고 소리 치며 실랑이질이다. 이른 열사의 볕에 잔뜩 찌푸리고선 티격태격해 하루의 시작이 만만찮다. 짜증스러워도 누구 하나 거들지 않고 피해 제갈길을 간다. 사실 일을 벌이는 당사자인들 바쁘지 않을까.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다 보니 격해져 참을 수 없고, 결과에 대한 피해의식으로 자기만의 여유나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심을 가질 수 없다. 이를 보며 탓하는 이도 막상 일에 맞닥뜨리면 오히려 더한 기세일 터. 나도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쫓아나가는 편이었는데, 어느 틈에 호승심이나 객기라고는 쥐어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제 길 가는 앞을 가로막던 아이들이 있지 않았던가. 여느때 같으면 맞서 날을 세우고 말로 쫓으며 꾸짖고, 행색이라든지 자세에 대하여 줄줄 늘어놓아 기를 죽여야 성이 찼는데, 눈치만 보며 비켜간다. 다툼이나 언쟁은 사절이다. 딴은 맞상대질로 나아지는 게 있던가.
사무실 뒤뜰 한구석에 선 청단풍나무. 화분으로 들인 걸, 어느 날 시름시름하다가 잎도 떨어뜨리고 생이 가물가물할 때쯤 총무팀 고 계장이 포기한 셈치고 옮겨심지 않았을까. 그게 이십 년은 넘었을게다. 유려치 못한 등걸로 버틴 청단풍나무는 볼품없어도 봄이면 제일 먼저 와글와글 잎을 틔운다. 한낮에는 쑥대머리 안에 모인 참새떼 조잘거림이 그치지 않았는데, 인기척이라도 내면 한꺼번에 호르르 날아올랐다. 고단함 때문인지 든든한 등걸 대신 잔가지만으로 버틴 생. 가끔 단풍나무 앞에서 이상과 현실을 떠올렸다. 측은한 눈길을 보내는 것을 묵묵한 나무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생네는 여지껏 공무원으로 재직중인데, 맞지 않은 옷을 걸친 듯 부자연스럽던 게 지금은 외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상글상글 순박한 웃음을 쉽게 흘리는데, 가끔 억척스러운 기를 보이기도 한다. 그게 우리와 생소한 기질이라 눈을 크게 뜨기라도 하면, 본인도 기미를 알아 계면쩍게 표정을 감춘다. 볼 적마다 마땅한 위로나 치하라도 건네야 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아 어물어물하는 사이 공손하게 말을 돌리는 동생네. 이래서는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하는지부터 모호해진다.
먼저 어머니를 여의고 나중 아버지도 떠나신 날, 자기 의견 피력이라고는 없던 동생네가 과감히 선포한다. 이제 집안 제사라든지에 절대 관여하지 않겠노라고. 시집 와 어른을 모시느라 부대낀 걸 알면서도 일면 섭섭하고 괘씸하다. 그래도 그간의 노고가 한둘이어야지. 고민 끝에 탓하지 않기로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부랴부랴 끊을 것을 끊고, 나눌 것은 나누어 집안일을 정리한다. 대신 동생네는 새벽 일찍 기도를 하러 나가거나 찬송을 부르며, 제2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혹시라도 다니러 가면 내가 혼자일 적에도 전에 없이 바짝 다가앉는다. 나이 들면서 용감해지는 여자들이 두렵기만 하다. 이른바 구원에 대해 일러주고 싶어 안달하여 인제는 손사래를 쳐도 악착같다.
아, 나도 그렇듯 마음속에 새 지표 하나 들이고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T.S. Nam., L'orphe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