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달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어릴 적처럼 소원을 빌었느냐고도.
언제 이 도시를 떠났던가. 화사한 시절을 보낸 꽃들. 이슬에 젖어 후줄근한 화단 백일홍을 못본 척 지나쳤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이 낯설다. 어린 시절을 딩굴어 요람 같은 곳이었는데. 이른 시각부터 종일토록 변화무쌍한 구름. 노부부가 가쁜 숨을 달고 올라왔다. 이따금씩 드러나는 햇빛에 반짝이는 아파트 숲을 보고는 노부인이 마치 비석 같다고 소리쳤다. 산자들의 마을이나 죽은자들의 마을이나 진배 없다는 투로 받아들였다. 익숙한, 이맘때의 메마른 공기가 폐부 가득 들이찬다. 터럭을 쓰다듬는 바람도 예전 그대로인데 마음자리 한 곳이 어느 때부터인가 채워지지 않는다. 볼일로 시내에 쫓아나갔다가 커피숍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소란스러움과 그들의 웃음 속에서 느껴지던 소탈함과 질박성, 거기에 배인 오래된 고집의 상관성을 생각했다. 문득 떠나서는, 잊고 지워버렸던 것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무릇 바깥을 떠돌아 내남없이 동화되고 젖어들어도 괜찮을텐데, 잠자리가 바뀌면 괜히 뒤척이게 되다니. 잠든 도시 속을 관통하는 자동차 굉음이 섭씨 육천 도로 들끓는 고로 속을 휘젓는 불길 같다.
한아름의 달이 떠올랐을게다. 허나 굳이 달을 찾지 않았다. 한번도 그럴 듯한 소원을 생각해내지도 못했지만 이를 하늘로 올린들 누가 들어 이뤄줄 것인가. 스팬드럴 유리 너머 어렴풋한 달 그림자를 느끼며 아득한 시절의 웅성거림만 꿈결처럼 더듬었다.
Phil Coulter, The Town I Loved S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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