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같이 자라목인 길거리 사람들. 기온은 어느 날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씩 내리고 오르기를 반복하여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처럼 내성을 키운 다음에야 겨울로 접어든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이야말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않는가.
사무실 안 영어 책임자와 과학 책임자는 내내 대치중이다. 안보는 듯 지켜보는데, 기온 같은 선순환이 아니어서 고민이다. 국회의원들이 새경치레를 한답시고 걸핏하면 티격태격하듯 으르릉대고 타협하지 않는다. 오로지 평행선을 달리며 반대를 위한 반대로 맞붙으니 어떡할까. 어느 순간 불꽃이 일면 걷잡을 수 없어 그냥 둘 수 없다.
'원래 집안이 앙숙인가요? 왜 툭하면 쌈박질입니까? 뜻에 맞지 않으면 관철시켜야지요. 싸움이야 나도 할 줄 압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주변이 어지럽고 피폐하다면 문제 아닙니까? 정도껏 해야지요. 그렇게 상대를 쫓아 뭘 얻습니까? 이쯤에서 끝내지 않으면 양단간 결단을 내리겠습니다. 두 분에게 불행한 일이 없도록 알아서 행동하세요.'
말이야 장황해도 뜻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이제 싸움을 그칠까? 천만에 말씀이다. 틀어진 마음이 돌아오긴 글렀다. 이런 데서 숙이면 곧 죽는 줄 안다. 뒤돌아서서 각각 맞대면했을 때의 격앙된 목소리로 보아 여지가 없다.
화해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용서와 포용이 뒤따라야 가능하다. 입으로 화해를 권유하는 나야말로 화해한 적이 없다. 일찍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내게 충실한 삶'을 영위하자고. 말이 쉽지, 그게 살아갈수록 어렵다.
단순하고 우직한 한 친구가 어떤 회합에 나를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우선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회합이라는 자체가 생리에 맞지 않다. 이를 계속 거절하자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나를 배신자로 규정'했다. 나중 상황이 바뀌어 그 회합은 무산되었지만 친구 녀석은 일언반구의 언급이나 사과 없이 지나갔다. 그렇게 마무리되었으면 두말할 것도 없지만 이후 녀석은 뻔질나게 나와 부대끼며 이와 유사한 행태를 되풀이한다. 질책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난 일을 시시콜콜 들추어봐야 뻔하지 않는가. 그걸 시작으로 의미 없는 싸움을 일삼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 과거를 깡그리 잊었는지 지금도 순진무구하게 전화를 하는 녀석에게 나는 무심하다.
이외에도 선한 탈을 쓰고 악을 따르거나 개인 잇속을 차리는 이가 의외로 비일비재했다. 그걸 참고 넘어가는 것도 고역이다. 때로는 내게 무한한 힘이 생겨 아예 이를 엎어버리거나 신神이 번개로 그 정수리를 쪼개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허나 애석하게도 여기는 인간 세상, 神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다보니 수동적인 나의 반응은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완강하며 적극적인 공격일 수밖에. 친구만이 아니라 동생도, 일가친척에게도 더러 나는 무심하다. 담을 쌓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 담장 안으로 온기 한점 들지 않더라도 감내해야지. 어쩌면 가신 분마저 꿈에 나타나 손 내밀지 못하는 것도 알량한 나의 용서가 행해지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상처나 분노, 울화 등으로 치부한다면 그건 말하기 좋아 한정하는 인간적인 인식일 뿐이다. 나의 안식은 요원하여 나중에 홀로 구천을 떠돌더라도 어쩔 수 없다.
Oscar Lopez, Loving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