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닥한 털실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지나는 여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얼굴 일부만 겨우 내놓은 채여도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반듯한 미간과 질끈 뒤로 묶은 긴 머리카락, 특히 초롱초롱한 눈에 해맑은 미소가 생생하다.
'으음!'
소용돌이치는 생각 사이로 물결처럼 밀려가는 인파. 망연자실 멀어진 자취를 더듬다가 '실실' 웃고 말았다.
'그럴 리 없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말야.'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 보이면 좋지 않다던데 어쩌나.
여의도쯤에서 차가 밀려 오도가도 못했다. 예정된 불꽃놀이 수 시간 전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이다. 시장터도 이러지 않을게다.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밀고 당기며 소리치는 이들. 일찌감치 자리잡은 이들은 한치 틈도 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다리 난간을 따라 끝없이 늘어진 수백 수천의 카메라가 인상적이지만 글쎄!
불꽃놀이가 시작되려면 두어 시간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쏘아올려지는 순간 사그라드는 불꽃에 왜 다들 열광하는가. 일생에 단 한번 꽃을 피운다는 대나무도 이를 보면 질릴 터였다.
외곽순환도로에서 전용차선인듯 안쪽 두 차선이나 나란히 막고서 어정대는 차들이 짜증스럽다. 차츰 바깥쪽으로 차를 뺀다. 이맘때 방천에 나가 연 날리던 기억을 떠올렸다. 난처하게 내 연만 날지 못했다. 떠오르다가 고꾸러지거나 가라앉기 일쑤이니. 바람이 사방팔방 춤을 춘다. 대나무 살로 버틴 연을 매만지고 귀퉁이를 편 다음 다시 바람에 내놓았다. 어느 순간 우쭐거린다고 느낀 순간 줄이 팽팽해진다. 드디어 허공을 가르고 오른 내 연이 다른 연과 나란히 펄럭였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자태가 얼마나 대견스럽던지. 손가락으로 감은 연줄을 슬슬 풀며 까마득히 연을 띄울 때처럼 조심스레 페달을 밟는다. 차가 떠올랐다.
불꽃을 보며 사람들이 탄성을 지른다. 휘황찬란한 도심 조명이 불꽃놀이 못지 않다. 아니, 판박이로 불꽃이 새겨진 듯하다. 위압적인 콘크리트 건물 그림자에 주눅들기 일쑤였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전깃불을 가장 먼저 밝힌 에디슨인들 이런 광경을 꿈이나 꾸었을까. 오가는 이들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주변에 대체로 무관심한 나도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본의아니게 눈과 귀를 닫고 지냈다. 스스로를 편하게 만드는지, 내쳐져 도외시하는 건지 모호하다. 불꽃놀이 다음의 허망함을 새길지라도 명멸하는 불빛에 약속 장소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새해 밝음이 온 누리에 가득하여, 그대도 부디 근심일랑 지우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KBS Symphony Chamber Ensemble, The Bluebird's Dream * 이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