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야 하는 길

*garden 2016. 1. 12. 00:00




"아이고, 늦은 시각에 이리 폐를 끼칩니다."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 괘념치 마세요."
일행을 데려다 주는 바람에 이리저리 돌았다. 나중 낯선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는데 방향 감각이 없다. 밤 늦은 시각이어서인가. 다시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기도 귀찮다. 어림짐작으로 더듬어 나오는데 웬걸, 도시의 미로가 만만해야지. 이 길이 맞다 싶어도 나아가다 보면 엉뚱한 곳이 나온다. 낭패인 걸. 일방통행 길을 거침없이 돌다 보면 제자리에 와 있으니.
"설마 귀신에 홀린 건 아니겠지!"
불 꺼진 상가 앞에서 눈을 크게 떴다. '이상'의 '십삼인의 아해들' 족적이라도 찾을 것처럼 뒷골목을 샅샅이 누비고서야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
허덕허덕 오른 높은 산, 마루금에서 보면 마냥 맹맹하고 거대하던 도시도 겨우 한뼘일 뿐이다. 날이면 날마다 헤매던 길은 어딘가. 허고한 날 저기서 쫓고 발버둥치며 울고 웃었다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파도소리처럼 잘게 부서진 찬 바람을 가슴 가득 여민다. 앞으로 걸어야 할 여정이 얼마만큼일까. 날개짓으로 허공을 횡행하는 솔개를 꿈꾸듯 올려다본다. 불빛 휘황한 도로를 미친 듯 질주할 때보다 뚜벅이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길에서 나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졌다. 어제는 설악 위에 섰고, 오늘은 북한산을 밟고 섰다. 뻑적지근한 장딴지를 자랑처럼 쓰다듬으며 내려가야지. 몇날 며칠이라도 거뜬하게 걸어 너도나도 달큰 만나야지.





 

 

 

 

 

 

 








Aschera, Whales Of Atla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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