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sk(1994)'는 가면을 쓸 때와 쓰지 않을 때가 전혀 다른 우리 이중성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헐리우드 영화이다. 커다란 입과 슬픈 눈으로 표정을 짓는 미국 배우 겸 코미디언인 'Jim Carrey'를 제목만으로 떠올렸는데, 그도 옛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마스크가 화두이지만.
"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나요?"
'잊었다.'고 둘러댈까 하다가 솔직히 말했다. '귀찮아서.'라고.
길거리를 오가는 이들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다. 아니, 더러 눈에 띄지만 드물다. 미증유의 호흡기 전염병으로 고통스럽다. 이에 대한 예방 수칙이 곳곳에 붙어 있다. 우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번거롭지만 스스로를 위해서라고 한다. 나 한 사람이 지켜져야 다른 사람도 안전할 것이기에. 그렇다고 무조건 '마스크 착용 의무'를 지우는 데서 오는 반발감 때문일까.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여기에, 자가격리중도 아니기에 아무렇지 않게 쏘다녔다. 마스크 매점매석에 대한 단속과 이를 통한 부당이득에 대한 추적 뉴스도 있다. 마스크는 나날이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이를 구하려는 이가 많아 난리법석이다. 혼란을 재우려고 마땅히 판매처도 지정되며, 한번에 구입하는 마스크 개수도 한정된다. 이른 아침부터 약국 앞마다 늘어선 줄이 십여 미터 이상씩이나 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쓴웃음을 짓게 된다. 오랜만에 보는 아이가 맨 얼굴인 내게 기겁하며 마스크를 하나 꺼낸다. 이런, 마스크를 진작 서너 개 장만해 놓기는 했다. 그게 면 재료이기는 하지만. 예전 황사나 미세먼지가 극성일 때 동생이 갖고 온 마스크도 딩굴고 있다. 허나 이번은 또다른 경우이다. 사스나 메르스처럼 공기중으로 놀라운 전파력을 보이는 바이러스 앞에서 이렇게나마 맞선 우리가 어설프기도 하다. 주로 누가 마스크를 쓰더라. 병원 수술실 의사나 공항에 나타나는 연예인들이나 얼굴을 감추려는 테러분자들과 꽃가루 시즌이면 이를 괴로워하던 옆나라 사람들뿐이었는데.
채워준 마스크를 쓰고 나간 적 있다. 아이가 신신당부한다. 이게 다 아빠를 위한 일이라고. 허긴 쓰고 보니 괜찮다. 마주 앉은 사람이 점차 목소리를 높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마스크 탓으로 말 전달이 쉽지 않다고 했다. 나야말로 마스크를 걷으려다가는 포기했다. 이러다가 앞으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게 되는 것 아냐? 어떤 일이든 거기 적용되면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며칠 뒤에는 약국 앞 대열에 끼어 몇십 분씩 기다리며 투덜댈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일이 생각 만큼 쉽지 않다고. 어찌 생각하면 쓸데없는 일에 매달리는 내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
헌데 그날이야말로 관공서에서 처리해야 할 볼일이 서너 건 있었는데, 낭패를 볼 뻔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면도 하지 않는다는 데 말야. 졸지에 마스크를 구한답시고 쫓아다녀봐야 소용없었을 게다.
생활 패턴도 바뀌었다. 모임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예정된 정기 모임도 연기한다. 모여서 식당에 가는 일도 피한다. 사촌들은 주일이면 예배당에 가기를 당연시했는데 어떡하고 있을까. 대체로 상관없는 일에 한눈을 팔지 않았는데 그럴 수도 없다.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신음하기는 마찬가지. 온 지구촌이 몸살을 앓았다. 날마다 발생 환자와 사망자 수를 나열하며 통계에 집착한다. 전 세계 인구 중 십오억 명 이상에게 집에 머무르라는 명령 내지 권고가 내려졌다. 궁여지책으로 나라마다 빗장을 걸어 잠그지만 바이러스는 국경을 무시하고 드나들었다. 삼월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사소한 바람도 흩어진다. 하찮은 우리 몸짓이 쓰잘머리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도 이타적으로 받아들여야지.
오랜만에 관악산에 올라서 보는 하늘이 맑다. 너도나도 성냥곽 같은 자기 터에 갇혀 몸부림치는 사이 봄은 당도해 있다. 꽃나무 아래서 선잠을 깬 것처럼 낯설기만한 세상.
두 번째 달, 잊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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