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나를 견디게 하는 것

*garden 2020. 9. 6. 02:12














트롯 경연대회에서 '막걸리 한잔'을 맛깔나게 부른 가수 '영탁'. 그걸 계기로 '영탁'이란 막걸리도 나왔다. 노래와 쾌남 이미지가 잘 결부된 탓이다. 모임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 막걸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술자리에서 사람들은 나를 위해 으레껏 '막걸리'를 시켜둔다. 다들 소주나 맥주를 마셔도 홀로 막걸리를 고집하고, 기본 한 병은 마시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막걸리를 따뤄놓고 책을 읽거나 바둑을 두거나 사진을 정리하기도 하는데, 나말고도 달려드는 게 있다. 바로 초파리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성가시다. 손을 휘젓거나 두 손을 마주쳐 애써 잡아도 주의를 흩뜨리는 초파리. 이게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잊을 만하면 눈앞을 오가는 통에 결국 일어섰다. 집 안을 들쑤셔 초파리가 나올 만한 근원을 없애고, 여기저기 약까지 분사해 칠갑해 놓았다. 이러고도 이것들이 나와 설칠까. 말끔해졌겠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움직이면 땀이다. 씻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앉았다가는 눈을 휘번득이며 칼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 인제 놀리듯 기세등등하게 우쭐거리는 초파리. 이것들이 지금 나하고 놀자는 거지? 하찮은 곤충 때문에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다. 한때 심산유곡 절에 머문 적 있다. 어느 때 무시무시한 말벌 등이 기거하는 요사채 안으로 들어와서는 '윙윙'거린다. 말벌 성향이 그런지, 무서워서 움츠리거나 피하면 더욱 달려들어 진땀을 뺀다. 그래서 대응방법을 바꿨다. 젊을 때라 이를 유희거리로 삼아서는 말벌을 상대로 잽을 날리거나 스트레이트를 뻗어 복서 흉내를 내면 도망쳤다. 요는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몸 사리는 약삭빠른 족속이다. 그때처럼 초파리를 상대로 풋워크를 일삼을 수도 없고, 차암내.
허긴 어딘들 곤충이 없을까. 사막 한가운데서도 계속 따라오며 활개치는 파리를 보고는 놀란 적 있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살아남는 게 곤충이라더니 실감난다. 그들과 싸우려는 내가 잘못이지.
며칠 전 친구들과 한밤 저수지에 몰려갔다. 가끔 비도 뿌리는 중에 야외 바람도 쐬고, 적조함을 지우며 보낸 것까지야 나무랄 데 없다. 낚시를 즐기는 다른 일행들도 눈치를 주고, 밤이 깊어 술자리가 파했다. 친구 두엇은 진작 쳐둔 휴대용 텐트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각자 차 안에서 잔다. 헌데 무더위와 갑갑함에 쉬이 잠들지 못하고 쫓아나왔다. 차에 시동을 걸어놓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고민한 때가 새벽 두 시, 어둑한 물가에 앉았다. 건너편 공장은 밤에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지 기계음이 지속되고 있다. 노래도 아니고 낮게 깔리는 음이 주는 무료함도 지겹다. 그보다 무시로 달려들고 물어뜯는 모기떼가 고역이다. 아무리 긁고 뿌리쳐도 물리칠 수 없는 한밤 공습을 어이하랴. 드러낸 맨살이 온통 공격 대상이다. 잠들기는 틀렸고, 그렇다고 늘어진 친구들을 깨워 쫓아나갈 수도 없다. 날 새려면 까마득한데 여기서 어떻게 견뎌야 할까. 술 기운이 남아 있으니 차를 운행할 수도 없다. 새삼 그 시각 청정하고 깨끗한 곳을 찾은들 상황이 좋아진다고 할 수도 없다. 이기심일랑 뿌리쳐야지. 머리를 흔들었다. 어쩌면 이는 아직도 나를 견디게 만드는 과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Masatsugu Shinozaki,
From A Distance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을 위한 노래  (0) 2020.10.04
울음에 대하여  (0) 2020.09.10
한 번의 만남, 천 번의 이별  (0) 2020.05.29
소 식  (0) 2020.04.01
이 봄, 막연한 너도 괜찮지  (0) 202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