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제가 불면증이 심합니다. 하루이틀 날밤을 새는 건 예사이고, 얼마 전에는 삼일 밤낮을 꼬박 샌 적도 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지 싶어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지' 하며 자리를 깔고 누운 찰나 아이들이 왔습니다. 함께 나가 피부샵에도 들르고, 머리 염색도 하고, 목욕하고 이발도 했습니다. 이렇게 호박에 줄이라도 치면 새 신랑처럼 훤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 여자이름인 남자 **이와 남자이름인 여자 **이가 오래도록 이어온 귀한 만남 끝에 결혼하는 날입니다.
사실 두 사람이 허락을 구할 때부터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하필 코로나로 제약이 심한 이때 결혼을 해야 돼? 하구요. 애써 위안도 가집니다. 비혼주의자들이 넘치는 판국에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겠다는 뜨거운 열정과 위대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도 싶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한 건 걱정만 앞세우는 제 성격 탓일까요. 준비 중에 곤두선 신경으로 인해 혹여 둑이 뚫리지나 않을까 하던 우려가 말끔히 걷히고, 소슬바람 싱그러운 가을날에 만사 제쳐두고 오신 하객 여러분 앞에서 떳떳하게 새 출발을 알리게 된 것을 신부 아버지로서 천지신명께 감사드리고 싶은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작은 기쁨은 순간적이어서 어서 이런 들뜬 마음을 다스린 다음 비로소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려는 어여쁜 신부, 당당한 신랑에게 당부하고픈 말을 챙기고 싶습니다.
여기가 강남입니다. 주변 젊은 친구들이 뻔히 받아들이는 그 흔한 '아빠찬스' 한번 안쓰고, 대견하게 자라서는 '앞으로 잘 살겠다'는 신랑신부를 보며 저맘때 제가 어떠했던가를 반성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아, 그리고 **아!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살면서 채워 가리라 믿는다. 지금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어떤 때 하루는 길지만 한달은 짧다. 땔감처럼 소모되는 인생이라지만 순간순간을 소모하면서 우리 삶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 다음 스스로가 만든 나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살아가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느냐. 아빠로서,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은,
첫째, '말을 잘 듣고 말을 잘 하기'를 바란다.
'말을 잘 듣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다. 이는 상대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상대를 알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귀가 두 개인 것도 말을 잘 들으라는 태생적 가르침이기도 할 것이다.
'말을 잘하라'는 건 두 번 얘기할 필요가 없다. 늘 맛있는 것, 몸에 좋은 것을 찾아 입으로 넣지만 거기서 나오는 말이 천박하고 상대를 말살시키며 욱조인다면 이야말로 말의 싹을 잘라 침묵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둘째 번에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 일이나 마구잡이로 쫓아서는 안되겠지. 냉철하게 접근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짠 다음 실현 가능하게끔 접근해야 할 것이다. 아빠처럼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갈증을 가지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 '사랑하고 이해하기를 그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다.
아빠 통장에서 매월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빠져나가는 돈이 있더라만 먼 이웃까지 쫓아가 사랑할 필요는 없다. 사랑은 나부터, 내 옆 사람으로 내 식구까지 껴안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방법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상대를 위한 사랑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 또한, 내 마음과 상대 마음을 합하는 것이다. 늘 새기고 추구하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명절 등 때를 빌어 억지로 엄마아빠에게 오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올 일이 있을 때면 그냥 전화를 하고 그래도 마음이 허하면 돈으로 보내라. 기꺼이 이해할 테니까. 그리고 이 결혼이 너희 둘이 한 게 아니고 여기 오신 수많은 분과 함께였다는 것을 기억해라.
새삼 바쁘신 일을 뿌리치고 찾아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리며, 새 신랑신부가 잘 살겠다며 보이는 각오와 어설픈 인사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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