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아직 바람이 분다

*garden 2020. 2. 17. 14:33










"형님, 이 시각에 어인 일이십니까?"
"술이나 한잔 할 수 있을까 하고."
"헛, 무슨 일이 있나요?"
"애들이 면역력 약한 어른들은 나가지 말라고 만류해서 자가격리중이기도 하니 넘 답답해서....."
"하하, 애들 말 잘 들어야지요. 헌데 어쩝니까? 회사 오비팀에서 한번 뭉치자며 진작 연락이 왔네요."
"에혀, 그럼 안되겄네. 나중 연락을 줘요."
"예, 가급적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동절기 바지를 하나 사야지. 이곳저곳에 들른다. 헌데 마땅하지 않다. 널린 게 바지인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오죽하면 제법 기온이 떨어진 날, 홑바지를 입고 산에 갔을까. 산행을 마친 중에 누군가 묻는다.
"왜 그렇게 얇은 바지를 입고 다니시는 거에요?"
대꾸를 할래도 여의치 않아 넘어갔다. 싸늘한 겨울 바람에 마음이 움츠러든다. 사실은 바깥활동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껴입던 바지가 해졌다. 이게 기능성이어서 편하다보니 주구장창 입고 다닌다. 그렇게 두어 해가 바뀌어 꺼내 입었더니 기능이 떨어진 건 물론 구멍 나고 찢어진 곳도 나타난다. 수선소에 맡기거나 세탁하다 보면 여벌이 아쉽다. 다른 바지를 장만해 입어도 성에 차지 않았다. 아무래도 몇 군데 더 돌아봐야겠어.
마침내 그럴 듯한 바지를 구했다. 헌데 기지가 뻣뻣한 게 아닐까. 세탁도 두어 번 하고, 다림질도 하지만 내팽개쳤다. 이건 내 옷이 아냐. 며칠 지나자 아쉽다. 다시 꺼냈다. 수선소에 갖다 맡겼는데 싹뚝 잘라버려 기장이 짧아졌다.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입는다는데, 그것 참. 두어 번 입다가는 세탁 후 다시 갖고 갔다. 안쪽에 말아넣은 부분을 드러내고 통을 줄였더니 그런대로 입을 만하게 되었다.
다음 날에는 등산장비점에 들렀다. 여지껏 멸실되거나 잃어버린 장비가 한둘이 아니다. 작정하고 이것저것 채우자 호승심이 부쩍 커졌다.

오랜만에 보는 이들은 반갑다.
"N만 빠지고 다 모였네요."
"아. N도 저기 오네요."
"헌데...."
턱수염을 길렀나 했는데, 가까이 오더니 턱에 댄 검은 마스크를 떼낸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이 나이는 추억들을 먹고 사는 때이다. 그래, 인제 그런 추억거리가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헌데 어디 나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 네, 짐도 꾸리고 마악 떠날 참이었습니다만 네팔쪽 산사태에다가 신종 코로나까지 난리쳐서는 말짱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반갑게 보잖아요. 사실은 이런 모임도 안되는데 우리니까 특별히 보는 거에요."
"온나라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니 그게 이상한데도 전혀 이상치 않은 일이 되었네요."
"저는 식당에서 마스크를 끼고 밥을 먹는 이도 보았습니다, 하하!"
"헌데 G선생은 허리가 많이 아프다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자리를 파하고서는 몇몇이 남아 다시 이차삼차를 갔다. 그리고는 근무하고 있는 후배들을 불러내서는 새삼 거나하게 마셨더니 몽롱하다. 그렇게 사는거야. 지난한 계절을 살아냈다. 메마른 바람이 부스럭댄다. 하지만 겨울 날씨가 이래서는 안돼. 온난화와 기상이변, 전염병 등이 우리 삶을 위협한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전광판에 '오늘 날씨'를 알리는 자막이 떠있다. '맑음, 0℃'. 그 위로 맑고 커다란 정월 보름달이 둥실거린다.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Cantata BWV 147 Herz und Munt und Tat und Leben
Jesus bleibet meine Freude, Chorale of Cantata
Jacques Loussier Trio / Yo-Yo Ma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 소리  (0) 2020.03.12
겨울 마지막  (0) 2020.02.19
이런 겨울도 좋다  (0) 2020.01.13
십삼월  (0) 2020.01.06
산타가 죽는 때  (0) 201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