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선자령 새벽녘까지 책을 펴들고 있다. 머리부터 덮어쓰고 있던 두꺼운 무명이불을 걷고 목운동을 하며 가슴을 쓰다듬었다. 나른한 건 중압감 탓이다. 해체 전의 소련 정치체제에 대한 거부와 비인간성을 폭로한 솔제니친의 단편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사 들고 왔다. 바로 읽지 않고 내.. 不平則鳴 2013.02.05
그렇게 한 백년 지난 다음 예전 사랑채처럼 말꾼들이 모이는 자리. 얼굴을 모르는 채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상대가 나이 들거나 어려도, 여자여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어색하지만 근사한 일이다. PC통신이 성행하던 시절, 접속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쪽지로 부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로서는 버거운 .. 不平則鳴 2013.01.18
겨울 묵상 손톱 뿌리께에 일어난 살갗 가시랭이가 여간 성가셔야지. 무심코 떼냈다가 낭패를 본다. 생살이 뜯겨 금세 피가 맺혔다. 순백의 설원을 가린 나무의 어지러움을 탓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한낱 늘어뜨린 나뭇가지라도 한땀한땀이 예사여야지. 숨이 목에 차도록 쫓아든 길. 경련이나 발.. 不平則鳴 2013.01.15
오후 연가 한밤중에만 슬쩍 내리는 눈. 매일 자고 일어나면 천지가 새하얗다. 기온이 영점 아래로 곤두박질쳐 내달리던 강물도 꽁꽁 묶었다. 예년보다 훨씬 일찍 한강이 얼었다며 뉴스에서는 호들갑을 떤다. 같은 위도상의 도시들 중 서울만 혹한에 들어 있다. 그러던 게 한 이틀 곁불 같은 햇살이 .. 不平則鳴 2013.01.08
동물원에서 서바이벌 경연장에 눈 내린다 달아올라 터질 정도로 치열할까봐 숨 죽이고 목을 집어넣은 채 내색 없이 걸어야 하니 화평어린 땅이 있을 리 없어 고슴도치처럼 눈만 반짝이며 내리막에서 낙타처럼 터벅대다가 누처럼 껑충껑충 뛰어보았다 비로소 눈이 성글어지다가 그쳐 수사자처럼 기.. 不平則鳴 2013.01.04
길이 길하도록 일망무제로 트인 언덕에 올랐다. 사흘 밤낮을 찌푸린 하늘은 낯을 펴지 않았다. 바람이 들끓어 몸을 가눌 수 없다. 다리가 휘청거려 위태위태했다. 그래도 가슴을 연다. 옷깃을 부풀리며 안기는 억센 바람을 한껏 받았다. 바람결을 잡고, 어느 순간 몸을 띄워야지. 날갯죽지로 균형을 맞추.. 不平則鳴 2012.12.31
소리쳐! 아이들이 티격태격한다. 두어 번 그만하라고 언질을 주었건만 그치지 않는다. 불러 혼쭐을 내기 전에 다투는 까닭을 캐물었다. 이미 눈물이 글썽한 동생은 형의 부당한 주먹질에 대해 울먹이면서 조목조목 나열한다. 눈만 내리깔고 있던 형은, 행위에 대한 설명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하.. 不平則鳴 2012.12.28
겨울고개를 넘어간다 끝난 판에 너도나도 말을 거든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었다면서, 미묘한 프레임의 차에 표가 갈렸다고 한다. 끄덕이는 이도 있고, 인정할 수 없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거나 탄식을 거듭하는 이도 있다. 나야말로 우리 집 보수 원뿌리이다.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그야말로 난공불락.. 不平則鳴 2012.12.21
꽃보다 남자라면 연휴에는 내 몸을 욱죄던 끈이 떨어져 지구 밖에 나앉은 것처럼 여겨진다. 미뤄둔 일을 해치우고 별 다른 계획 없이 빈둥거린다. 몇날 며칠 세면이나 이닦기 외 잡다한 일을 배제하고 지났다. 게으른 아침에 얼굴을 만지면 코 아래와 턱 밑이 꺼끌꺼끌했다. 이참에 수염이나 길러봐. 영화 .. 不平則鳴 2012.12.17
낯선 초상으로 서다 똘망똘망한 눈망울, 순백의 피부, 해맑은 웃음소리, 순진무구한 영혼....선한 것이야말로 모두 아이에게 있다. 아이를 안으면 세상 소란이 멀어진다. 거울 속 얼굴이 신기해 손을 벋는 아이. 이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별이 내린 듯 아련한 천사 옆 풍상에 찌든 저 얼굴은 도대체 누구인가. .. 不平則鳴 2012.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