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비에 젖은 동해. 드넓은 바다에 비해 삶의 터전은 좁다. 언덕배기를 따라 다닥다닥 붙은 계단집이 재래시장 한편에 쌓아둔 종이상자 같다. 행로를 가늠하기 어렵다. 움푹 패인 골짜기 묵정밭 건너편으로 넘어가려고 얽히고 설킨 골목길에서 헤맸다. 간신히 머리만 내놓은 묵호등대를 푯.. 不平則鳴 2017.01.10
동전 수집 결말 뉴스 말미에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건 부자 이야기가 나왔다. 이유가 쪼잔하기 짝이 없다. 돈 일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혀를 찼다. "그깟 푼돈 때문에? 차암, 할 일도 없네." 그가 매도할 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찮은 우수리라며 푼돈을 쉽게 생각한다면 돈을 .. 不平則鳴 2017.01.05
겨울 설악 늘 조용한 민희씨. 옆에 있어도 없는 듯하다. 서너 번 봐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심하다. 티브이에서 보는 탤런트와 거리가 있는 얼굴이어서인가. 아니, 애초 관심을 두지 않아서일 게다. 본인도 이를 자각한다. 내색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떨어져 껍질 속에 들어 스스로의 .. 不平則鳴 2016.12.19
우리 언제까지 한 여자가 죽었다. 꽃다운 생이 끝났다. 가버린 사람은 말이 없고, 남은 사람은 애닯다. 그녀 어머니가 오열을 한다. 눈두덩이 부어 제대로 떠지지 않을 만큼. 아이들만 보며 홀로 지나온 세월이 한스럽다. 고양이 울음처럼 떠도는 흐느낌이 질긴 명주실 같다. 생전의 그녀와 북한산을 오.. 不平則鳴 2016.12.15
Archaeopteryx 화석 시조새(Archaeopteryx) 화석처럼 펼쳐진 고군산군도. 요동칠까 봐 발을 크게 굴러 보았으나 끄덕없다. 채 발달하지 못해 오래 날기 힘들었던 흉골돌기쯤에서, 오종종 모여 십이월 햇빛과 파도소리를 즐기던 후손들이 훌쩍 날아올라 여보란듯 파란 바다를 갈랐다 Edward Simoni, Serenade 不平則鳴 2016.12.12
오서오서가다오서 오서산 오직 사랑만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던 시절. 정작 하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애를 끓었다. 눈만 뜨면 긴가민가한 너의 모습. 손 내밀어도 잡히지 않고 웃음만 짓는다. 그렇게 견디다가는 미칠 것만 같아서 길 끝자락에 죄다 던지고 버리고 깔아뭉개고 오겠다며 떠난 적 있다. 오.. 不平則鳴 2016.11.29
송광사 가는 길 아일랜드의 유명한 작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우물쭈물 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으로도 유명하다. 허나 살펴보면 이건 오역이다. 'I kno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어서 '오래 버티면 이런 일(죽음)도 있을 줄 알았어' 정도로 했으면 좋을걸... 不平則鳴 2016.11.18
남도 두륜 가을 골판지 박스를 세우고 자는 노숙인을 보았다. 누가 눈살 찌푸리든말든 곯아떨어진 그 단잠이 부럽다. 아침이면 노숙인은 달팽이처럼 집을 이고 길 떠나겠지. 집에 들어앉으면 나도 박스 안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유래 없이 더웠던 지난 여름. 박스 바깥이 날마다 화탕지옥이어서 징글징.. 不平則鳴 2016.11.14
둥지 안에서 샤워기 아래 타일 바닥이 붉게 물든다. 녹물인가. 공동 저수조를 쓰니 다른 집에서인들 마찬가지여서 누군가 의문을 제기할 거야. 의아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헌데 봄날 초원에 풀꽃 피듯 생긴 붉은 기미가 사그라들기는커녕 점차 짙어지며 영역도 넓어진다. 어느 아침 칫솔질을 .. 不平則鳴 2016.11.11
두 발로 우뚝서는 십일월 어느 때 발목뼈가 부러졌다. 뼈를 잇고 기다리는 동안 의구심이 생긴다. 다시 '바로 설 수 있을까'에 대하여. 몸을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다. 발이 있는데 감각이 없다니. 단지 절굿공이처럼 둥근 뼈 끝으로 바닥을 짚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상태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감.. 不平則鳴 201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