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내려놓아야 할까 진창 이어지던 가랑비도 오후 들며 뜸했다. 일찌감치 전을 편다. 어스름 평상에서 어머니는 칼국수를 밀었다. 저녁을 떼운 다음 어디로 마실 가셨을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눅눅한 바닥이 견딜 만한지, 이리저리 딩굴던 동생들이 까무룩하다. 팔베개로 누운 채 어둑해지는 저녁을 지.. 不平則鳴 2018.06.28
어쩌면 깃털처럼 떠올라 너울거리다가 푸르른 숲에 길게 몸을 뉘었을 때 아, 익숙한 기분이 되살아났어 잊은 듯 채워진 풋풋한 향기와 지운 어떤 일을 기억해 내려고 생각에 잠겼어 어쩌면 당신과 나는 나무와 바람이지 않았을까 수줍은듯 내비치던 당신 미소를 몇날 며칠이나 되새겼어 그런 당.. 不平則鳴 2018.06.10
봄 봄 옷고름 만지작거리며 머뭇대는 새악시 같은 그대, 고즈넉한 산길 한가운데 서라. 사방 굳건한 나무들이 어깨동무하며, 비단결 같은 바람에 묻어 온 꽃비가 가녀린 어깨를 감싸 휘돌 것이니, 삐죽빼죽 얼굴 내미는 새싹도 그대 앙증스런 발을 간지르며 떠받혀 올려 온 산 아래 우뚝 세우지.. 不平則鳴 2018.04.14
파랑새를 찾아서 까마득한 곳을 헤맨다. 이건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게 아닐까. 가만, 돌아가야 하는 길은 어디지. 끈을 잡고 있었는데 그게 어디서부터인가 엉킨 듯하다. 누군가에게 뭔가 전달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그러다보니 생판 낯선 거리 가장자리에서 허겁지겁 달리기만 한다. 때로는 자전거.. 不平則鳴 2018.04.11
꽃 불 "더 이상 안춥겠지요?" "네?" "이제 봄이지 않나요!" "아, 네." 모임에 갔다. 의식하지 않고 빈 자리에 앉았더니 생판 모르는 얼굴뿐이다. 아니, 지정된 좌석이 아니니 다들 그렇지 않을까. 앉아있는 내게 말을 거는 이. 무료해서이겠지. 헌데 이이는 누굴까. 말이 어눌하다. 못알아들은 건 내.. 不平則鳴 2018.04.06
달 문 늦으막히 정월대보름 달이 떴다. 아쉽다. 심술구름이 엥간해야지. 블라인드를 치듯 숨바꼭질시키는 바람에 저녁 내내 온전한 얼굴 한번 볼 수 없다. 뭐시냐, 어릴 적 엄니와 함께 달 보며 뭔가 빌기도 했는디. 그서 뭐혀유? 빨랑 자야제. 아, 댐배나 한모금 빨구. 일케 잠 안오는 것도 조만.. 不平則鳴 2018.03.09
소백 숨 오랜만에 식구들이 밥상에 앉았다. 식사 중에 웃고 재잘거렸다. 웬일일까. 미용실을 다녀온듯 젊어진 모습의 어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환한 웃음을 보였다. 문간을 서성이는 아버지께 용돈이라도 드리려고 주머니를 뒤적이는데 푼돈만 나온다. 그래도 챙기시는 모습에 저으기 안심.. 不平則鳴 2018.02.14
겨울 한적함, 그리고 백운대 정상 바닥 표식, 염초 릿지길, 만경대, 인수봉 정상, 사면, 인수봉 너머 도봉산 산성입구이다. 버스에서 내린 시각이 열시 오십분. 늦어도 괜찮다. 홀로산행이므로 느긋해야지. 평일 아무도 없는 길. 산오리나무 씨앗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상수리, 졸참, 신갈나무 잎이 지천에 쌓.. 不平則鳴 2018.01.24
동백꽃 진 자리 오랜만에 모였다. 안부만 주고받다가 답답한 누군가 이쪽저쪽 연결하여 마련된 자리이다. 어려운 자리인 걸 태무심했나 보다. 약속 시각쯤에야 닿았다. 진작 좌정해 있는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잡은 손이 부담스럽지 않게 해야지.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끔 한다. 잠깐씩 의도적.. 不平則鳴 2018.01.16
그 나무 아래서 곧게 벋은 큰키나무 아래 서 있었다. 든든한 나무에 등을 기대자 들린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내리는 맑은 햇살. 푸르름도 함께 내린다. 한두 사람씩 모여들어 시끌벅쩍해졌다. "이제 가시지요." 누군가 호기롭게 소리를 낸다. "아직 오지 않은 분이 많아요. 조금만 기다립시다." ".. 不平則鳴 201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