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 다시 봄날, 그대 유언쯤 새기라는 뜻으로 알고 바람에 묻혀 우쭐거리며 걸었다만 길은 요원하고 계곡 물소리 또한 그치지 않았다 Wayne Gratz, Norwegian Wood 不平則鳴 2020.03.12
겨울 마지막 넌더리 날 정도로 시끄러운 옆자리 한잔 걸친 사내 한무리가 제 안방마냥 떠들어대 난장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가 얘기를 풀어내는 놈도 그래 갈라져 툭사발 같은 음성이 우선 귀에 거슬린다 저 놈 일행들은 배알도 없어 낯 간지러운 맞장구가 밑도끝도 없으니 지네 집안부터 학교와 지연까지 줄줄 꿰내 비 온 다음 무너미 계곡 물길처럼 지겹다 혀를 '끌끌' 차다가는 건너편 벽에 걸린 TV를 보았다 거기도 좌담중인 떼거리가 비잉 둘러앉아 왁자지껄하다 누군가의 말이 이어질 적마다 자극적 자막이 따라 붙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낄낄거리게 하니 이건 틀림없이 B정상적이야 그러다가 옆자리 녀석들 우르륵대는 웃음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가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하던 걸 남이 해서 싫은 걸까 귀 막을 수 없으면 신경이라도 끊.. 不平則鳴 2020.02.19
아직 바람이 분다 "형님, 이 시각에 어인 일이십니까?" "술이나 한잔 할 수 있을까 하고." "헛, 무슨 일이 있나요?" "애들이 면역력 약한 어른들은 나가지 말라고 만류해서 자가격리중이기도 하니 넘 답답해서....." "하하, 애들 말 잘 들어야지요. 헌데 어쩝니까? 회사 오비팀에서 한번 뭉치자며 진작 연락이 왔.. 不平則鳴 2020.02.17
이런 겨울도 좋다 단지 뒤편에 사는 이 선배. 가끔 마주치다 보니 눈인사 정도였는데, 어느 때 동네 사람과 함께한 자리에 끼어있다. 비로소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당연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오늘은 제법 춥습니다!' 나이 여든이 가까운 분이라 자연스레 '선배'라 호칭하며 .. 不平則鳴 2020.01.13
십삼월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리 사이를 가로질러 간 시간을 더듬었다 성긴 채 잦아들지 않던 까무룩한 밤들! 모래알을 씹듯 서걱대며 섞이지 않던 또다른 날에 불꽃 같은 생기 올라 환해지려나 Yanni, Romantic Piano 不平則鳴 2020.01.06
산타가 죽는 때 어머니는 삶이 외줄타기라는 걸 진작 안다. 그리하여 우리가 위험 구덩이에 쫓아가는 걸 극력 싫어한다. 여름이면 물가에 못 가게 막고, 겨울이면 얼음판 근방에 얼씬도 못하게 일렀다. 그래도 한겨울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강나루 얼음이 두터워지기 시작하면 몰래 바깥으로 내뺄 궁.. 不平則鳴 2019.12.29
환중몽 환절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감기. 심술쟁이처럼 군다. 며칠 전 함께한 이에게서 톡이 왔다. '감기 좀 어떠신가요?' '이제 괜찮네요.' '그럼 통화 좀 합시다!' 자판에서 손을 떼기도 전에 전화가 와 지체 없이 받았다. 두어 마디 주고받았을까. "어쩐 일이십니까? 성님.....쿨럭!" "감기가 .. 不平則鳴 2019.12.03
행복은 어디 있을까 행복동 산 228번지에 사는 행복이네를 찾아간 때가 언제였더라. 행복이는 한두어 잔 술에 코가 빨간 지 아부지 뒤로 숨기만 했다. 아, 그때 들었다. 개울을 박차고 내려가는 물소리를. "이넘 지지바가 제 행복입니더." 뒷걸음질치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던 순박한 그 웃음을 이제껏 잊고 .. 不平則鳴 2019.10.26
팔월 비 여름 속 여름, 너는 무엇을 생각하느냐! 여름이어도 물을 끓였다. 급하게 소용될 일이 생기겠지. 씻은 보온병을 엎어두었다가 넘어뜨렸다. 잠이 덜깬 탓이야. 요란한 소리에도 다행히 탈 없다. 그래도 꼼꼼하게 점검했다. 비상식량에 행동식, 코펠과 버너 등을 쟁여 넣은 배낭을 들어본다... 不平則鳴 2019.08.27
초식성 비애 날마다 몸집을 불리는 도시. 파뒤집고 엎어놓은 길을 피해, 오늘도 조심스럽게 걸었다. 굴착기나 레미콘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름도 낯선 우람한 장비들이 예사로 횡행한다. 여기를 훑고 내일은 저기로 가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대로변은 번듯해도 질색이다. 반면에 뒷골목은 감출 수 없.. 不平則鳴 201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