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531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불면 걱정스럽다. 왜냐, 기침을 달고 살아야 하니까. 혹여 누군가 함께 있으면 염려스럽다. .어느 순간 '쿨럭'대기 시작하면 잠깐일지, 아니면 한참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끓임없는 기침으로 기진맥진할 때까지 나아갈 지도 모를 일. 대체 왜 이럴까. 추위에 대한 방어기제가 있어 필연코 맞닥뜨릴 겨울에 대한 준비를 몸이 알아서 미리 작동시켜야만 하는걸까. 내가 기침으로 겨울을 준비하듯 누군가는 손발이 싸늘할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면근육이 뻣뻣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 겨울 터널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고서는 햇빛 환한 마당에서 우리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The Corrs, Ruby Tuesday(Live)

不平則鳴 2021.12.02

문경새재 오르는 길

너나 없이 갇혔다. 셋이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눈총을 받았다. 커피라도 한잔하려고 들어가면 방문등록부터 해야 하니. 그래도 가을은 소리소문 없이 자리잡았다. 혼자 산기슭을 오르는데 '톡'이 들어온다. '오늘 혼자 문경세재에 왔쑤. 근데 헐, 대박!' '호젓하니 좋겠네요. 어떤 일이 그리 즐겁게 하오?' '여그 삼관문 휴게소 아줌마가 날 알아보네. 가죽나물부침개도 입에 쫘악~ 달라붙고.' 십년은 되지 않았을까. 장 소장과 둘이 문경세재에 간 적 있다. 초여름 사과꽃이 피었다. 양봉벌이 없는지, 부지런한 농부가 과수원에서 일일이 인공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있었다. 점심때도 지나 쉬엄쉬엄 오른 발걸음에 무언가 아쉽다. 삼관문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다가 넌지시 던졌다. "여기서 자고 내일 갑시다." "그럼 나도 자..

不平則鳴 2021.11.08

여 정

질 주피곤에 절었어도한낮 가을 햇살 헤집어꿈을 꾸게 하나니지친 영혼 일으켜 숲길로 들어섰다내내 친구처럼 촐랑대는 물소리밤새 재촉한 바쁜 걸음 덕분에남은 길 멀지 않아어스름 빛에겉과 속, 안팎과 삶과 죽음이 어울려 하나로 돌아간다겨울 또한 금방이겠어탐 색흔들리는 바람 속어지러운 날갯짓부전나비 한 마리갈꽃 찾아 헤매다쑥부쟁이 속에 숨었다채 못자란 몸을 다스릴자양분이라도 얻었을까Celtic Spirit, White Water

不平則鳴 2021.10.25

옷이 날개라고

퇴근해 들어온 아이. '덥다, 더워!'를 연발하며 바깥에서 묻힌 텁텁함을 손사위로 털어낸다. 더위에 지친 탓일까. 체념우선인 어투 끝에 샤워부터 하고 나온 다음 팬티 바람으로 나대는 아이. 여기저기 벗어 놓은 옷이야 치우겠지 싶은 바람도 공염불이다. 다 큰 녀석에게 매번 잔소리를 할 수 없지만. "야, 임마. 그게 뭐냐?" "참나,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이게 네 집이냐?" "적을 두고 보금자리로 삼으면 그게 제 집이지, 남의 집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보기 흉해. 옷도 잘 벗어야 예술이지, 잘 못벗으면 외설스러운 것 알지! 잠시 뒤 동생이 들를지 모르니 아무 거라도 걸치고 있어!" 여름이야 더워서 그러려니 하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빵빵한 난방으로 벗은 채 가뿐하게 생활하니, ..

不平則鳴 2021.09.16

악질 소굴

"의외로 많이 지체되었네. 약속 시각에 빠듯하게 닿겠어." "그 근방에 주차할 곳이 있어야 할텐데."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이 선명한 서쪽 하늘이 볼 만해 시선을 두고 있다. 그 순간 옆에서 후욱 치고 들어온 오토바이. 전방을 주시하던 친구가 기함한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출렁거렸다. 마침 앞쪽 신호가 바뀌었다. 늘어선 차들 옆에 주춤거리고 선 오토바이 옆에 바짝 다가갔다. "오냐, 너 잘 걸렸다. 이 시끼." 차창을 내린 친구가 소리친다. "야 임마, 그딴 식으로 운행할래? 사고 나면 어떡할거냐." 괄괄한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씩씩대는 친구 서슬에 횡단보도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기웃거린다. 친구가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마구 소리쳤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있던 젊은 친구가 고개를 꾸벅 조아렸다. ..

不平則鳴 2021.08.17

지금 이대로

저 초록 숲을 건너 검푸른 바다가 나올 때까지, 가자 잠결에 울리는 전화. 무심코 손을 뻗어 화면에 눈을 두다가는 끊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잖아. 운전중에 전화기가 울리기에 화면을 조작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세요'라고. 두어 달 뒤 우연히 스마트폰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몇 번이나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답신으로 남은 전화번호라니. 누구지? 계면쩍지만 가로늦게 문자를 보냈다. '대체 누구십니까?' 잊을 만할 때쯤 '누구 아니시냐?'고. 명기된 메시지를 보았다. 그 뒤에 스스로를 밝히는 메시지가 없어 아쉽다. 궁금증이 증폭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은 걸려오는 스팸전화에다가 바쁜 일과로 지나쳤다. 그리고 뜨거운 오후 나절,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명멸하는 햇살로 눈을 바로 뜨기 어려운..

不平則鳴 2021.07.23

일상은 어디서나

"한참 더운데 이번 주말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 "뜬금없이 바람이라니, 누구와 어디서?" "그냥 우리 모임이지. 토달지 말고 시간, 장소 일러줄테니 빠지면 안돼!" "준비물이라든지 각자 챙겨야 하는 것이라도 있겠지?" "한두 해 본 사이야? 한꺼번에 준비하고 나중 일정하게 나눌테니 몸만 나와."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해가 쨍쨍한 휴일, 유흥을 떠나게 되었다. 연천 어디쯤으로. "자, 신 나게 달려보자고. 오늘 운전은 내가 봉사할게. 모두의 즐거운 하루를 위하여!" N이 승합차 운전대를 잡았다. 금방 흥겨운 트롯 메들리가 오디오에서 줄줄이 쫓아나왔다. 쭉 벋은 자유로를 달려갈 때 소풍 가는 병아리마냥 떼창도 더러 이어진다. 눈을 시리게 만드는 차창 밖 푸른 초목이 눈앞으로 달려왔다가 뒤로 휙휙 사라졌..

不平則鳴 2021.06.23

동백여인숙에서

꽃 구경이라도 할랬더니 '이월이는 냉랭하고, 삼월이는 지날 때마다 찬바람 불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월이야말로 내게 따악이지만 저 바쁜 일로 마주칠 일도 없으니. 그렇다고 푸근한 오월이라도 보려니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여인숙 쥔장, 내 말 듣더니 혀를 찬다. - 다아 씨잘데기 없고만이라...... 이래저래 어지러운 심사 술로 매조질 수밖에. '밥의 미학'을 부르짖던 임지호씨 영전에 Kris Baines, To Have And To Hold

不平則鳴 2021.06.13

아우성

"앱 하나 찾아서 깔아줘." "신상을 하나 봐왔는데 해외직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아이디 비번을 또 바꾸라네. 이번엔 뭐로 해야 할까?" "이건 왜 이래, 저건 또 뭐지?" 결국 뾰족한 아이 음성이 뒤따른다. "제발 엄마, 꼭 필요한 것만 물어봐줘." 살 날이 아득하다. 살아온 날의 내공만으로 알 만해야 할텐데, 낯선 것뿐이니. 그래서 사는 일이 점점 어렵다. 그런데 아이들은 종이 다른 걸까. 배우지 않아도 몸에 밴 것처럼 척척 알아서 나아가다니. 어른들이 길을 제시한다는 말도 옛말이다. 일일이 아이들한테 물어서 해결해야 하니.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을 거듭 들으며 은밀히 새기던 봄은 이미 없다. 햇빛사냥을 하며 저희끼리 와글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바뀐 게 확실하다. ..

不平則鳴 2021.06.04

세 월

그렇게 맞장 뜬다고 세월이 지워지기라도 할 줄 아느냐 새초롬한 연둣빛 산괴불주머니 연약한 꽃대를 세운 건 그대 손길이겠지 완강한 담벼락을 타고 흘러내린 줄장미를 활짝 피운 건 그대 입김이겠지 바람에 흩날리는 꽃가루처럼 화사한 햇살을 스치는 건 그대 흔적이겠지 이제 바람으로 떠돌아 속박없는 그대, 행여 가까이 오거든 지난 시름일랑 지우고 나른한 꿈이라도 다시 꿀 수 있게끔 보잘것없고 거친 육신이나마 주리니 쉬어 가소서! Georges Bizet, Je Crois Entendre Encore

不平則鳴 2021.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