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그것 십일월 창살 때문인지 창천 해도 멀다 나를 욱죄고 짓누르며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두리번거리며 허우적거려도 청맹과니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Carlo Aspri, A Moment Of Eternity 不平則鳴 2015.11.07
꼬리뼈에 대한 기억 봄날, 살색 조그맣던 몸. 초록으로 변해 나무 등걸에 잎사귀처럼 감쪽같이 붙어 있더니, 십일월 박토 위에서 거무틔틔해진 도마뱀을 본다. 어느 때 위험 구덩이에서 구사일생 살아났는지 낭창거리던 꼬리일랑 싹둑 잘려버린 채 머뭇거리다가 도랑을 건너 옹벽 사이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不平則鳴 2015.11.01
이제 괜찮아야지 비 오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난 날이 자취 없어 미상불 다가올 가을과 겨울을 걱정스레 떠올렸다. 그래서 이상하다. 아직 초록을 미처 벗지 못한 풀과 나무가 지천인데 어쩐 일일까. 이른 시각 지하철로 들어가는 입구, 난데없이 방한점퍼 차림인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말야. 다음 날은 .. 不平則鳴 2015.10.16
그대 수선화 인류는 어떻게 직립하게 되었을까. 태어나 벌떡 일어선 다음 석가처럼 사방 일곱 발자국씩 뚜벅뚜벅 걸었을까. 아닐거야, 돌 전 기어다니던 아이가 어느 때 사물을 짚고 일어서듯 그렇게 차츰 몸을 세우고는 한두 걸음씩 걷지 않았을까.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젓가락을 들었다가 멈칫했다... 不平則鳴 2015.10.11
동행 "이른 아침부터 보이던데, 저 할머니는 여태 밭에 있었나 봐." "집에 있으면 며느리가 불편해 한다고 나와 있다네요." "그렇다고 종일 있어? 이 땡볕에 탈나지 않을까!" "그 정도야 자각 못할라구. 그나저나 억척이 왠간해야지. 모다 외면할 정도이니....." 한뼘의 땅도 그냥 놀리지 않았다. .. 不平則鳴 2015.09.29
또 한 계절 한기에 잠을 깼다. 무의식중에 이불깃을 잡아끌었다. 엊저녁 운동을 마치고 나올 때만 해도 후덥지근해 땀을 꽤 흘렸는데, 계절을 구분하는 금이 있어 문득 그걸 넘었는지. 불과 너댓 시간 만에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와 목덜미까지 이불을 덮어 쓰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날이 밝자 .. 不平則鳴 2015.09.18
지난 여름 밤 온몸의 땀구멍이 다 열려 경쟁하듯 땀을 내뿜는다. 맨살이 닿은 바닥이 끈적거리다 못해 척척하다. 비가 오려는지 오후께부터 구름이 두텁게 몰려든 것을 보았다. 눈을 감아도 어수선한 주변이 감지된다. 심야임에도 도로 폭주족이 자동차 굉음을 요란하게 터뜨리며 내달렸다. 그 뒤로 .. 不平則鳴 2015.09.14
일상 동화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전화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갸우뚱했다. 블루오션이 대세라지만 IT기업에서 전화기를 만들어? 거듭 생각할수록 뜬금없다, 그게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해서. 그렇찮아도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애플의 Mac이라든지 소프트웨어 가격이 만만찮아 결제를 받을 때마다 몇날.. 不平則鳴 2015.08.27
신사로 남아 우리가 대청마루에 올라가고 난 다음이면 제멋대로 노는 신발짝들. 말을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할머니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하이고, 이놈들아. 정신머리하곤. 신발이 이게 뭐냐!" 아닌게아니라 식구가 얼마 되지 않아도 현관이 좁다하고 어질러진 신발. 어수선하여 정리하다보면 그때 .. 不平則鳴 2015.08.23
어쩌면 너도 발에 채이는 마늘 두 쪽을 주워 선반에 올려 두었더니, 그게 며칠 뒤 싹을 틔웠다. 간밤 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베란다 구석 쯤인 듯하여 가 보았더니, 박스 안에 담아 둔 양파가 제 살을 깎아먹으며 파릇한 싹을 창병처럼 내밀고 있다. 소란을 꾸짖겠다고 쫓아간 내가 무안.. 不平則鳴 201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