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 폭닥한 털실모자와 목도리를 두르고 지나는 여자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얼굴 일부만 겨우 내놓은 채여도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반듯한 미간과 질끈 뒤로 묶은 긴 머리카락, 특히 초롱초롱한 눈에 해맑은 미소가 생생하다. '으음!' 소용돌이치는 생각 사이로 물결처럼 밀려가는 인파. 망.. 不平則鳴 2016.01.04
기억의 영속성 새털처럼 가벼워 둥둥 떠다녔네 우리를 따라 사방에 흩어지는 웃음 노란 햇빛이 얹힌 창틀에 올라 닦은 말간 유리창으로 보이던 풍경 호오~ 불며 서린 입김에 그린 꽃잎이 박제처럼 남은 나날들 꽃 향기 같은 날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빌었지 그렇게 지나가리라 또, 새 날이 문득 시작되.. 不平則鳴 2015.12.22
길을 멈추고서 전 구간을 달린 마라토너처럼 마지막 스퍼트를 내는 중인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결승점에 발이 닿는 순간 허물어진 그대는, 위대한 스스로에게 치하를 보내는 한편 쓸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 집으로 돌아가는 누군가는 걸음을 서두를 게다. 마을을 감싸도는 저녁밥 짓는 연기에 저.. 不平則鳴 2015.12.13
하얀 꿈 설깬 잠 때문인지 뚱한 표정의 후배 서두르며 옷을 꿰입는 내가 못마땅하다 미적대며 나갔다가 들고 온 소반에 받친 꿀물을 내미는데 새북 희끄무레 불 밝힌 부엌쪽에서 또닥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니 어젯밤이야 어쩔 수 없었고..... 아침까지 내리 신세질 수야 없지 우격다짐으로 다그쳐 .. 不平則鳴 2015.12.04
삼십년 전 고주망태가 되어 후배에게 이끌려 오르던 산동네 중턱쯤 교회당 담벼락을 따라 십이월에도 즐비한 꽃을 보았다 독말풀이라 했더니 그래도 에인젤트럼펫이란다 굳이 한잔 마저 하고 비틀비틀 일어서려는데 녀석 누나가 붙잡는다 저 아래 내려가도 이 시각에 차가 없어서..... 이부자리 봐.. 不平則鳴 2015.11.26
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을 잘했으면 좋겠다. 중국 전국시대 합종과 연횡책으로 제후들을 설득했던 소진이나 장의 만큼은 아니라도, 제대로인 생각을 제때 차분하게 나타낼 수 있었으면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말하다 보면 도취되어 어조가 높아지거나 빨라지기도 하고, 경청하는 이를 보며 분위기를 타는 순.. 不平則鳴 2015.11.24
지난 다음 보고 듣는 것이 다 신기한 네살 귀염둥이. 유아원에 다녀온 어느 날 거침없이 소리친다. '똥!'이라고. 아이 입에서 '똥'이라는 말이 나오자 엄마아빠라든지 주변 어른들은 기함한 듯하다. 이것도 '똥!'이고 저것도 '똥!'이다. 놀라는 어른들이 재미있는지 아이는 연거푸 '똥이야, 똥!'하고 소.. 不平則鳴 2015.11.22
산다는 게 사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그저 그래.', '그날이 그날이지, 뭐.' 가볍게 받는 어투이다.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어야 할까? 웃음을 거두고 눈을 들여다보면 신중해지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처럼 흔들려.', '어름사니가 줄타기하는 듯하지.' 심드렁하여 독백처럼 뇌까리기도 .. 不平則鳴 2015.11.16
가을 수산리 나뭇잎에 얹혀 노니는 햇빛. 바스락대는 숲길.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 두런두런거리며 걷는 오솔길에서 때아니게 합세하여 조잘대던 산새 소리. 문득 우리가 가을 속을 눈물겹게 지나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David Angell & Russell Davis, The Adieu 不平則鳴 2015.11.11
실적이 있어야 산다 줄선 화물트럭과 내달리는 질주족들 사이에서 서커스를 하듯 가속페달을 밟았다. 때로는 커브길에서 몸이 쏠리기도 하고, 드리프팅을 하듯 차체가 밀릴 정도로 달렸다. 비로소 코를 '킁킁'거렸다. 공기도 익숙하다. 거의 다 와서야 드문드문하던 차가 잔뜩 몰려있는 곳을 만났다. 사냥감.. 不平則鳴 201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