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곳에서 식구가 모였다. 때가 되어 상차림으로 모처럼 분주하다. 말간 얼굴과 환한 웃음, 자분거리는 걸음들이 평화롭다. 헌데 이 집 남자들은 어째 하나같이 집안일을 도울 줄 모를까. 식탁에서 반찬 그릇을 가지런히 놓는 손을 보다가 단아한 아이 옆모습을 보았다. 무시로 보는 익숙한 모습이 .. 不平則鳴 2015.02.06
하루하루 낯선 별에 떨어졌다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다면 오늘은 이백여든 번째 별이다. 보이는 길 끝을 어림했다. 어디로든 통하겠지만 무턱대고 움직일 수도 없는 일. 구분하여 매듭이라도 짓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 간밤에 뿌린 눈발이 남아 있어 희끗희끗한 응달을 습관적으로 피해 디뎠다. 머.. 不平則鳴 2015.01.21
그해 겨울과 다른 눈을 뜬 순간 잠의 경계를 벗어났다. 만장처럼 주렁주렁 널려 있던 꿈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청각과 후각이 살아난다. 어디서 장작을 태우는지 스며드는 화근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지난 시간은 꺾인 관절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수북하고, 새 시간은 스러지는 새벽 미망 속에.. 不平則鳴 2015.01.14
시무간 발이 걸려 하마트면 넘어질 뻔했다. 가슴을 쓸며 발 아래를 살펴본다. 좁은 보도에 억지로 가로수까지 심어 두어 길이 반쯤 막혀 있다. 찻길로 내려서야 했는데, 나무도 온전하지 못하다. 갇힌 곳에서 윗둥치가 잘린 채로 안간힘을 써 뿌리를 벋었으나 답답하다. 힘줄처럼 돋은 뿌리가 인.. 不平則鳴 2015.01.06
그래도 지금 가렵거나 열이 나 무심코 손길이 가게 되는 상처 부위. 의도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해도 정상이 아닌 육신은 때가 되면 칭얼대는 아이 같다. '이곳이 아무 감각이 없는 건 왜 그렇습니까?' '불편한가요?' '굳이 불편하지야 않아도 이상 증세이니 당연히 궁금하지요.' '저번 수술 때문.. 不平則鳴 2014.12.30
내게로 오는 가시고기 '와자작'대며 사탕을 깨먹는 게 슬프다. 어금니를 통해 전해지는 무지막지한 굉음. 머릿속에 공사장이 들어선듯 와글댄다. 마법 같은 달디 단맛을 은근히 즐기지 않고 앞뒤 없이 이로 깨고 바수는 격렬함은 대체 어디서 기인하는가. 단맛이 아이들 이를 망가뜨린다고 어머니가 쫑알거리.. 不平則鳴 2014.12.19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지하철로 간다'며 애띤 목소리로 전화한 옆자리 여자 아이. 스마트폰에 눈길을 두다가 꾸벅거리더니 긴 생머리가 내 오른팔에 늘어뜨려지도록 모르고 있다. 그게 이제 머리와 어깨까지 넘어와 기댄 무게감이 점점 더해진다. 물리치려다가는 참았다. 버티려니 힘이 주어져 벌서는 기분인.. 不平則鳴 2014.12.16
겨울 북한산 계곡 의상능선에 오르면 유도를 잘한 오촌당숙이 생각난다. 기골이 장대해 앉은 모습만으로도 듬직했다. 일억육천만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화강암 바위가 층층이 포개지고 솟아 거칠 것 없는 의상능선이 S자로 꿈틀꿈틀 돌아나간다. 의상 마루금에서 광활한 김포평야와 경인지역 빼곡한 아파.. 不平則鳴 2014.12.09
스마트한 세상 '전화기 있지? 좀 줘봐.' '왜?' '전화기를 두고 왔는데, 아이 엄마에게 연락해봐야겠어.' 몇 번이나 시도하던 친구가 투덜거린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왜, 받지 않아?' '아마 낯선 번호여서 그런가봐.' 스마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것은 걸러낸다.. 不平則鳴 2014.12.02
가을 추억, 겨울 기억 시장 어귀 싸전을 무심코 지나쳤다. 가게 앞에 몰지각한 이들이 함부로 차를 대기도 한다. 이를 막으려고 배치한 커다란 화분 서너 개. 거기서 고추나무가 자라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봉숭아 씨앗이 싹트기도 하지만 대개 근방을 활개치는 비둘기들이 차지했다. 싸전 주인이 심심하면 알.. 不平則鳴 201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