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지우는 법 출근 때마다 이용하는 지하철, 여느 때처럼 육호선 뒤쪽에서 넷째 번 칸에 올랐다. 마침 빈 자리가 나 비집고 앉았다. 개학을 해 복잡한 건가. 오른 기온 탓인지 후덥지근한 차내. 목도리를 끌렀다. 오늘은 조급증으로 허덕거리지 말아야지. 느긋하게 열자. 밝은 뉴스만 읽자. 스스로에게 .. 不平則鳴 2009.03.03
우리가 나무였을 적에 잉잉대며 눈 흘기던 바람. 칼바위를 내려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하다. 이웃 아저씨처럼 넉살 좋은 웃음을 담고 걸음의 앞뒤에 걸리적거리면서. 산모퉁이를 휘감은 길은 내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거듭하며 이어지다가 억센 오름을 하나 치고서야 백년 숲에 닿았다. 오감스러워 눈총을 받던 .. 不平則鳴 2009.02.25
감각을 고르며 크라바트라 부르던 넥타이. 폭 넓은 목도리에서 유래하여 보 타이bow tie가 되었다가 지금과 같은 포인핸드fourinhand 형태로 낙착된 시기는 얼마되지 않는다. 넥타이를 매고 나가려는데 매는 방법을 알아야지. 거울을 보며 이리 돌리고 저리 애써봐도 안된다. 간단한 듯 했는데 그것 참. 안방으로 가 보자... 不平則鳴 2009.02.20
겨울에게 바라노니 굳이 마음에 의지의 심줄을 휘둘리지 않아도 몸은 제가 알아서 움직이곤 했다. 습관이 지배하는 일상. 인지하지 않아도 조종할 정도이니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가. 허나 거추장스러운 때도 있다. 행해 온 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나아가고 행동하는 일련의 과정들. 가장 합리적이라 여기며 무심코 내린.. 햇빛마당 2009.02.18
달팽이 시간 묻기 꿈이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얼떨떨하다. 굼뜬 자세로 있는데, 와글거리는 모닝벨. 가 보니, 아이는 잠결에 소음을 지우지 못해 더듬거리기만 한다. 대신 정지 버튼을 눌러 준다. 잠은 시공이 구분되지 않는 일차원인지, 아님 사차원의 세계인지. 지금 우리 아이는 과연 어디에 머물러 있는 걸까. 에스에.. 不平則鳴 2009.02.13
또 다른 저녁 침을 삼키기 위해 목을 빼야 했다. 요지음은 좽일 날씨가 왜 이려? 구름이 낀 듯 꾸물거리기만 하고. 비가 언제 왔더라? 땅이 이리 가물면 온전한 게 있을 수 없지. 어느새 어두워졌나. 조금 전까지도 주위가 또렷하더니 사물을 분간할 수 없어. 그려도 이만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제. 침침.. 不平則鳴 2009.02.11
우화등선 소통이 안되면 답답하다. 갇힌 줄도 모르고 갇혀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암담할까. 소리를 낸다. 여보세요! 누구 없나요? 억지로 크게 불러본다. 여보세요! 격리된 공간. 저 혼자 웅웅대던 소리. 꼬리가 맥없이 사그라드는 것을 보면 차츰 무섭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다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수반된다.. 不平則鳴 2009.02.09
오리 날다 결혼해줘요. 글쎄, 결혼하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면 되잖어? 결혼을 해야 더욱 행복해지잖아요. 민들레 홀씨처럼 품 안에 담박 내려앉아서는 고집부리던 녀석. 아빤 진작 결혼을 했다고 해도 또 해달라고 졸라서 실소를 짓게 하질 않나. 입 안에 사탕이라도 굴리면 손가락으로 기어이 빼가던 녀석을,.. 햇빛마당 2009.02.04
세상을 움직이는 손 수업중 기사 작성과 인쇄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던 선생님이 돌아본다. 아부지가 신문기자제? 이저를 따질 겨를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이르신다. 낼 신문 인쇄하는 데 쓰이는 연판 하나 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봐라. 다들 봐야 알기 쉽겄제. 비릿한 냄새가 없어 당신이 즐겨 드시는 조기가 아침.. 不平則鳴 2009.01.30
늘 이 길에 길을 잃었다. 지나온 길이 낯설어 그대로 가면 안될 것처럼 혼란스럽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 볼 참인데, 황량한 바람만 오가는 읍 구석 어디 인적이 있어야 말이지. 단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키재기를 하는 곳. 블록 담 허물어진 틈에 지난 여름 무성하던 호박 넝쿨이 질긴 섬유질만 걸치고 사그라.. 不平則鳴 2009.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