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도 발에 채이는 마늘 두 쪽을 주워 선반에 올려 두었더니, 그게 며칠 뒤 싹을 틔웠다. 간밤 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베란다 구석 쯤인 듯하여 가 보았더니, 박스 안에 담아 둔 양파가 제 살을 깎아먹으며 파릇한 싹을 창병처럼 내밀고 있다. 소란을 꾸짖겠다고 쫓아간 내가 무안.. 不平則鳴 2015.08.19
길찾기 방과 후에 정구를 따라간다. 지지리 못사는 동네여서 언덕받이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그래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정구네 집은 제법 선선한 바람도 든다. 눈을 씻고 찾아도 낮엔 어른을 볼 수 없다. 더러 거친 행세를 하는 형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툭툭' 치고 간다. 괜히 .. 發憤抒情 2015.08.13
여름 눈 목덜미에 흰띠 무늬를 두른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몸을 길게 늘이고는 가슴 높이로 앞발을 받쳐든 채 숲을 주시한다. 지난 봄 새끼라도 낳았음직한 말랑말랑한 배와 부드러운 가슴살을 떨며 목으로 가르랑대는 소리를 낸다. 그 앞으로 완강하게 콘크리트 바닥을 치고 높다랗게 방책을 세.. 不平則鳴 2015.08.07
내 안에 누군가 있다 어둠 속에 드러나는 주변 사물들. 면과 면을 구분한 선을 떠올린다. 형상이 본질인지, 공간이 본질인지 애매모호한 시간. 정형이라고 단정한 형태가 때로 어그러지다가 변하기도 하여 당황스럽다. 사실과 허구가 뭉뚱그려져 돌아간다. 어지럽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 시간에 누.. 不平則鳴 2015.07.22
그 여름 속 서둘러 온 식구가 집을 나섰다. 근교에서 물놀이라도 할 참이다. 먹을 음식과 옷가지 등을 보퉁이에 싸들고 버스에 오른 다음에야 소풍 간다는 게 실감난다. 맞바람을 받아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버스가 부르르 떨릴 때마다 매캐한 배기가스가 진동한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 發憤抒情 2015.07.09
감자처럼 뒹굴고 싶어 장마가 시작된다나, 밭에 심은 감자를 생각했다. 채 여름 전부터 달아올라 해가 오르면 무간지옥이다. 가뭄이 심해 채마밭에 나가면 다들 시들시들했다. 감자 싹이 꽃도 피우지 못하고 말라 죽는 게 태반이어도 비에 썩힐 수야 없지. 이제나저제나 작정하지만 도무지 짬이 나지 않는다. .. 不平則鳴 2015.07.06
초록을 지우다 여름 주인인 초록. 전 주인이 방을 빼기도 전에 해일처럼 밀려들어 질긴 장벽을 쳤다. 때이른 태풍 몇 개야 진작 꺾였다. 논밭이 갈라지고 호수 바닥이 드러나 흙먼지가 푸썩거렸다. 기상학자들은 가뭄 원인으로 슈퍼 엘니뇨 현상을 들었다. 모기가 기승을 부려 잠을 설치다가 희끄무레한.. 不平則鳴 2015.06.30
원대리 자작나무 숲 오래된 것에서는 애틋한 향기가 난다. 자연에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름드리 나무로 들이찬 숲을 찾는 이유이다. 숲을 이룬 나무를 올려다보면 저마다 기품이 있어 위안을 준다. 숲을 다녀오는 가족 모습에 초록 웃음이 묻어있다. 빙긋 웃는 나를 보며 그들도 손을 흔들었다. 오.. 不平則鳴 2015.06.24
어떤 소식 의사가 하는 말은 늘 모호하다. 흰자위가 많은 눈을 치뜨며 지켜보자는데,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답답한 심정에 매달려 다그치면 몇 가지 검사를 더하자고 할 게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응하는데 다음에 설명을 들어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다. 이거야 원, 내 몸 어.. 不平則鳴 201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