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이고 싶은 발을 동동 굴러도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느려터진 자동차. 신호마다 발이 묶이고 길은 그리도 막히는지. 약속 장소는 멀고, 시간만 쏜살처럼 내뺀다. 연신 시계를 쳐다봐도 대책 없으니 이를 어떡하나.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집을 나서는 건데.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뉘우쳐도, 바짝바짝 타는 입안 침.. 不平則鳴 2010.11.02
그대 오시는가 그녀가 온댔지. 삼단같은 머릿물결에 앉아 찰랑대던 햇빛. 웃음을 터뜨리면 억만 년을 견뎌온 동굴 속 종유석을 타고 내린 물 한 방울이 육십이일째 뚝! 떨어져 파동을 만들고 간섭하여 온 동굴을 휘젓던 것처럼 숲을 들뜨게 하던, 그녀가 온단다. 기별하여 작정하고 모였다. 그냥 있음 안되잖여? 그러.. 不平則鳴 2010.10.26
사랑아, 내 사랑아 주렁주렁 달고 있던 호박을 지난 추석 난데없는 물난리에 썩히거나 날려 보내더니, 저놈이 미쳤나. 하루 아침에 꽃을 열두어 송이나 피워낸다. 한편으로는 애닯다. 커다란 잎이 변색하며 오그라드는 통에 식겁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기온 뚝 떨어진 아침마다 인제는 수정도 못할 꽃을 한다발씩 토해.. 不平則鳴 2010.10.20
45병동 우리 꼬마가 노랑봉지 안에서 꺼낸 가랑코에는 앙증맞은 손을 흔들었다. 가느다란 팔에 띄운 별을 보고 다들 침을 삼켰다. 참, 예쁜 꽃이구나! 하늘의 별이 탁자 위에서 반짝인다. 안타까운 일은 별이 지는 것을 봐야 하는 것. 시름시름 앓는 가랑코에 앞에서 꼬마는 눈물을 글썽인다. 온 힘으로 밀어올.. 不平則鳴 2010.10.16
어두움에 딩굴어 오후 내 뭉그적대는 서점 안. 참고자료를 구할 참이었는데 엉뚱한 책만 뒤적인다. 벌써 서산머리에 해가 뉘엿거릴게다. 그래도 흡족하다. 풍족한 식사 후에 달디 단 후식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감기는 문장들. 어떤 대목에서는 소리내 읽으며 감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는 책먼지. 정수리 안쪽을.. 不平則鳴 2010.10.13
마지막이기 위해서는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말라던, 행복멘토 최윤희 씨 부부가 동반자살했다. 연전 긍정적인 삶에 대하여 사내강연까지 한 적 있기에 뉴스를 들으며 우리는 더 허탈하여 말을 잃었다. 하지만 뉴스 안 사정을 들으며 의외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 지병에 대한 고통스러움, .. 不平則鳴 2010.10.09
오리 밖 선한 빛 오릿고기를 잘하는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가는 내내 질척거리는 가을비. 곡예라도 하듯 구불구불한 편도차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달리는데, 차내 사람들이 어깨를 대고 출렁인다. 아까부터 깔리는 이승철 노래가 감미롭다. 이 친구는 결혼 후 오히려 노래가 대중적이 된 것 같아. 간혹 건너편에.. 不平則鳴 2010.10.07
어떻게 통해야 하나 무시로 오는 연락. 데스크 책상으로 가서 받는다. "비가 와요." 비가 온다니. 그래서 어떡하란 말인가. 오늘 밤을 새고 내일 늦은 시각까지 원고를 써나가도 모자랄 판국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작성하고 검토해야 할 문서도 많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삐걱대는 나무 .. 不平則鳴 2010.10.04
핫바지가 싫어 집안일로 모인 친인척. 아이들만 신났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해 집 안팎으로 몰려 다녔다. 싸우거나 울고 웃는 소리가 안산만큼 높다. 결국 부산하던 이모가 이들을 모은다. 대청에서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서로 키를 대본다. 또한, 마주 앉아 누구 다리가 더 긴지 견준다. 떡 본김에 제.. 不平則鳴 2010.09.30
아직은 푸르른길 불쑥 떠올리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 나는 왜 세상에 나왔을까. 몸의 여기저기를 만져본다. 손아귀에 드는 말랑말랑한 살의 감촉과 단단한 뼈의 결합이 실감나지 않다니. 이미 들풀은 벌레들에게 뜯어먹히거나 시들어 보잘것없다. 날갯짓이 애처러운 잠자리는 그래도 유유히 허공을 난다... 不平則鳴 201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