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 계곡 길 산56번지라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꼬질꼬질한 동네 고샅길을 아까부터 오르내리는 아낙네. 모피로 상체를 감싼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거의 울상이었는데 사람 기척이 일어 반색한다. 바람에 들썩이듯 열린 함석문을 향해 돌아섰다. 저어기요? 마악 말을 붙이려다가 멈칫한다. 저게 사람인가? 씻지 .. 不平則鳴 2011.03.28
내가 봄이다 독불장군인 겨울. 그 겨울과 벗한 지 오래인 키다리 아저씨. 홀로 남아 떠올리고 추억하며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내색을 말자. 누가 뭐라던 관심 없다. 자기 안에만 골몰하여 빠져나오지 못하더라도. 배려할 게 없다 보니 자기 세상이 침해받는 것 또한 극도로 싫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不平則鳴 2011.03.22
말의 싹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잘하는 일은 모든 것을 말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갖고 온 문서의 표제어가 이상하다. 도치법을 쓴 말머리가 가볍다고 했더니 대번에 짓는 한심스런 표정. 그래야 관심을 끌 수 있지 않냐고 외려 반문한다. 차근차근 풀어가는 정공법이 좋다고 재차 덧붙여도 부득부득 우긴.. 不平則鳴 2011.03.17
자리 탓 조만간 천지간에 불꽃놀이가 시작될거야. 들여다 본 적 없는 곳에서 길어올린 암반수 네 동이, 봄향 두 근 반, 오색실 여섯 타래..... 준비하는 건 더디고 날은 하루가 다르게 촉박하다. 한편으론 일각이 여삼추라, 이리 뛰고 저리 쫓으며 공명타가 든 부끄러움. 불현듯 내 피가 초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 不平則鳴 2011.03.15
봄 걸음 사뿐사뿐 다가오는 맞은편 처녀, 상큼하기도 해라. 다름 아닌 것이 앙가슴에 꼬옥 품은 화분에 눈길이 간다. 보세란인가. 옆을 지날 때에는 숨을 멈추었다. 벼린 칼날처럼 날렵한 초록검을 감싼 선명한 노란 날. 햇빛이 찰랑거리는 난 잎에 얹혔다가는 베어지고 부서져 점점이 흩어진다. 지난 겨울이 .. 不平則鳴 2011.03.08
화분을 들어내다가 햇빛이 눈부시다. 빛살 아래 서자 가슴 속까지 훑는 트임이 있다. 이런 기분은 얼마만인가. 지나는 이들이 연신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을 보인다. 봄인가. 그래도 조바심하면 안돼. 눈으로 볼 수 있기 전까지는, 손에 잡힐 때까지는 서두르지 말아야지. 긴장을 풀자. 신경을 누그러뜨리고 상체를 펴 뒤.. 不平則鳴 2011.03.02
지난 겨울 길 떠나기를 갈망하는 건 왜인가? 어릴 적 심심하면 만지작거리던 생각 하나. 세상 어디엔가 또 다른 내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나를 닮은, 똑같은 나와 어느 때 마주치면 어쩌지. 이내 실소를 머금는다. 나와 내가 만난다는 것도 우습다. 나 아닌, 모르는 이를 보는 게 차라리 나아. 그래서 길을 떠나고.. 不平則鳴 2011.02.22
안나에게 말이 꽃인 나라. 꽃은 저희끼리 맞부딪어 까불며 새초롬한 태를 낸다. 모이고 흩어질 때마다 소리를 드높인다. 여긴 사시사철 꽃이 떠다니는 세상. 꽃은 혼자이거나 함께여도 좋고, 함추름 비에 젖거나 눈을 씌워도 얼음에 갇혀서도 반짝이기만 했다. 뾰족한 꽃은 높다란 가지 위에 올라 용을 써 새 움.. 不平則鳴 2011.02.17
거기서 책을 펴놓고는 무심한 글 이랑 어디에선가 나를 잃었다. 같은 글귀를 몇 번이나 입으로만 되풀이하여 읽었다. 이상하다, 이 대목은 왜 이리 해득하기가 어려운가. 부정과 반어법으로 범벅인 문구에서 하나의 긍정이 부정으로 덮히고 부정이 긍정으로 뒤바뀌는 현실이 아연하다. 햇살이 눈부셔 허둥지.. 不平則鳴 2011.02.14
설산을 넘어서 1991년 알프스 빙하에서 얼음인간Iceman이 발견되었다. 시신 수습 과정에서 풀로 엮은 외투와 가죽옷, 모자와 칼, 도끼, 활과 화살이 담긴 전통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놀랄만한 사실이 발표되었다. 조난당한 등반객이나 일이차 대전 중 사망한 병사 정도로만 여겼는데, 철기.. 不平則鳴 201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