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정 산에서의 시간을 왜 고행이라 여길까. 이는 산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탓이다.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산을 내려왔다. 이것저것 소모하면 짐이 덜어지리라 여겼는데, 배낭은 돌덩어리처럼 변해갔다. 사흘 내내 걸어 뻐근한 다리, 씻지 못해 찌부둥한 육신이 거추장스럽다. 새벽 안개가 발목.. 不平則鳴 2011.10.28
가을 어귀 꼭 참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떫떠름한 자리가 있는가 하면 콧노래가 날만큼 신명나는 자리도 있다. 서둘러 쫓아가고, 헐레벌떡 지하철로 이동한 다음 노선버스로 갈아타고서 흔들리며 달려가는 과정을, 누가 시킨다면 과연 군말 없이 해낼까. 챙겨 다니는 장비가 만만찮아 배낭이 유난.. 不平則鳴 2011.10.19
그렇구나 억센 손아귀에서 쥐어짠 빨래 같은 햇살, 열기를 잃고 휘청댄다. 그 아래 꼼지락대는 풀잎. 스러지는 것에 대한 애잔함은 동일시 때문인가. 청명한 날이 이어진다. 시를 읊기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오후. 기분 탓이다, 노랫가락을 떠올리다가는 하마트면 남일해의 차분한 저음이 잘 .. 不平則鳴 2011.10.07
구월 조각 바람이 비를 품은 건지, 비가 바람을 몰아붙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바람과 비에 휘둘리는 숲. 이건 아니다. 인제 생기를 지워야 할 때가 아닌가. 비를 피한 나는 비로소 큰 세상을 올려다 본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서 전전긍긍하면서. '후드득'거리는 비가 섬유질로 채운 나뭇잎을 .. 不平則鳴 2011.09.20
여전한 그때 눈을 떠도 미처 돌아오지 못하는 정신. 밤새 늘어뜨린 육신이 버겁다. 이렇게 새 날을 맞을 수야 있나. 아침은 머리맡에서 서성이고 지난 밤은 하체께에 웅크리고 있었다. 감감한 어둠 쪽에 둔 발을 꼼지락거린다. 몸을 일으키려다가는 포기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맞는 아침도 이랬.. 不平則鳴 2011.09.15
가을속 사랑을 잃은 이는 한 사흘 울고 싶고. 추억에 목마른 이는 지치도록 걸으려고 한다. 새 날이 그리운 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저기 숲 그늘에서 마음을 달래는 이는 또 누구인가. 까닭 없이 나는 온종일 헤매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알리바바처럼 동굴 안에서 보물을 잔뜩 챙겨 올 건 아니지만 주문을 잊.. 不平則鳴 2011.09.07
구월고개 학예회날이다. 열일 제치고 달려온 동네 어른들. 서로 안부나 근황을 묻느라 여념없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는 깍듯하게 허리를 굽힌다. 드디어 마련한 연극무대가 열렸다. 연습 때에는 단락마다 끊어져 볼품 없었는데 막상 시작하자 그럴 듯하다. 아이들도 긴장하여 자기 맡은 역할에 충실하다. 더러.. 不平則鳴 2011.09.05
나는 여름 활개칠 기력이 있어야지. 내내 함께 뒹굴던 젖은 시간. 뒤뚱걸음으로 오늘에야 비릿함 배인 포구에서 멈췄다. 낭창거리던 때를 넘겨 적요한 갯가에 바다만 찰랑댄다. 담벼락 아래서 비루먹은 것처럼 쭐쭐대던 강아지가 습기 가신 바람에 뱃전 너울이 펄럭일 적마다 귀를 세우고는 도망 갈 태세를 갖추.. 不平則鳴 2011.08.24
사람의 마을 귀소본능이야 누구에겐들 없겠냐만 여느 사람 못지 않은 내가 요즈음 가지는 의문 하나, 집이 집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깥에서 식사하는 일이 잦다. 출근해서야 별 수 없다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매식으로 끼니를 이어야 하다니. 식당이란 이질감을 떨칠 수는 없을까. 한 구석에서 시.. 不平則鳴 2011.08.22
팔월로 어항 안에도 한 세월 뻐끔담배 피듯 들이킨 공허함 쯤이야, 미련없이 아감구멍으로 내는 붕어 진작 입가 양념 칠갑을 하고는 게걸스레 음식을 씹어 삼키는 이들이 싫어. 꼬리지느러미야 퇴화하였다. 옆지느러미만 부채처럼 살랑대는 한여름 오후 길에서 길로 향한 이들 숙맥 아닌 다음에야 제갈길을 .. 不平則鳴 201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