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걷잡을 수 없는 세월이라더니. 봄이라 여겨 아직 긴팔차림으로 견디는데, 한낮이면 벌써 염천이다.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에 들었다는 둥 동료들은 모이면 입을 맞춘다. 땀을 훔치며 갸웃한다. 일기변화에 적응이 어려운가. 어질어질하여 혼미스러운 게 그래서인가. 순서대로 일을 차근.. 不平則鳴 2012.05.09
숲에서 저녁 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가다말고 옷을 꺼내 입은 엄마가 빙빙 돌았다. 어떻게 하면 보라색 고운 빛깔의 옷을 잘 입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데 쉽지 않다. 내가 어리버리할 때 슬쩍 다가온 여자친구는, 하얀 천으로 세상을 덮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꺼내놓는 바.. 不平則鳴 2012.05.03
흔들리면서도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열차.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허나 어딘가 불편한 듯 여겨지는 건 나뿐인가. 운신이 원활하지 않아 은연중 답답함을 안고 가야 한다. 반면에 무미건조하던 창밖 풍경이야말로 차츰 현란해진다. 내내 통화중이던 옆자리 여자가 탄성을 지른다. 어머, 여긴 봄이 한창이.. 不平則鳴 2012.04.25
봄이 대판 싸우고, 사이가 어그러진 친구가 사라진 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지난 시간을 들춰보니 언짢기만 하다. 비위를 맞춰 준 것도 나이고,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감싸준 것도 나이고, 아슬한 때에도 나만은 너의 편이 되어 줬잖아. 함께한 시간일랑 싹둑 잘라 버려야지. 다시는 너와 나.. 不平則鳴 2012.04.20
열린 저녁의 일 어우당 유몽인의 설화집 '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남명 조식(南冥 曺植)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남명은 영남에 은둔해 살며 벼슬을 진흙탕 보듯 하였다'고 한다. 사실 남명은 늦은 나이인 서른일곱 살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으며, 이후 뜻을 바꿔 학문연구와 제자양성.. 不平則鳴 2012.04.17
봄날 아우성 딱 한 숟가락밖에 안되는 밥을 남긴 아이. 습관처럼 남겨 지나칠 수 없다. 경작의 역사와 밥의 노고, 목하 진행중인 식량 전쟁까지 거창하게 늘어놓고 을러 해치우게 만들었더니, 아뿔싸! 온종일 얼굴에 핏기를 지우고 있다. 답답한 가슴을 문질러도 소용없고 소화제를 먹여도 안듣는다니.. 不平則鳴 2012.04.10
무섬다리 무심코 빈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책꾸러미가 이리 무겁다니. 손가락이 끊어지는 듯 고통스럽다. 엉덩이를 붙이려다가 깜짝 놀랐다. 재빠르기도 하다. 순식간에 나타난 웬 아주머니가 냉큼 앉았다. 경우나 예의를 따지기 전에 이건 인간성 문제야. 얼결에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아니다, .. 不平則鳴 2012.04.04
저녁 파르티타 오붓하고 단란하다고 여겼는데 착각이었던가. 바쁘다는 핑게로 같이 한 적이 드물기도 하겠지만 어느 때부터 겉도는 식구들. 소리를 모아 웃은 적이 언제이던가. 그렇게 데면데면해져서는 인제 한데 모이기는커녕 말도 드물게 섞는다. 들어오면 틀어박혀 기척 없는 아이들. 일일이 불러.. 不平則鳴 2012.03.28
이제 바라지 않겠어 황소 만한 덤프트럭이 모래를 부리고 사라졌다. 마른 먼지가 뭉클뭉클 일었다. 모래 안쪽을 헤치면 물기가 있어 손장난 하기에 알맞다. 모래산이 서너 개 만들어진 공터에 아이들이 틈만 나면 몰려가 뒹굴었다. 언제부터인가 인부들이 짝지어 작업한다. 모래를 채로 쳐 고르고 적당량의 .. 不平則鳴 2012.03.23
그리운 독재자 운치 있게 자리잡은 아름드리 바위 소나무나 장인이 빚은 듯 오묘하게 솟은 화강암 벽도 지나친다.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오르는 길은 탁 트인 조망을 처음부터 열어주지는 않는다. 대신 따사로운 햇살이나 적요한 숲의 정경을 새길 수 있는 것도 즐거움이다. 들뜬 마음이 차츰 갈무.. 不平則鳴 201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