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복판 연일 곤두박질해 낮은 곳에서만 머무는 기온. '기름값이라든지 생필품 가격이라든지, 다들 오르는 것뿐'이라고 투덜거렸는데. "육 년만에 가장 추운 날씨라네." "그래도 예전 추위가 이보다 더 했던 것 같으이." 생활이 핍박을 받든 말든 사태난 눈을 보는 시선은 흡족하다. "청소하러 오시.. 不平則鳴 2010.01.14
겨울산에 오르다 새벽하늘 한쪽에 선을 긋는 별똥. 저게 깐따삐야 별일까. 아니면 신새벽 누군가의 영혼이 오르는 중인가. 탁자 위에 놓인 사과를 한입 덜컥 잘라먹었다. 해를 품고 달빛을 머금었던 아삭한 맛을 기지개와 함께 썽퉁썽퉁 씹어도 시큼한 잠의 뒷맛을 지우지 못했다. 어둑한 집 앞 도로는 빙.. 不平則鳴 2010.01.11
부디 배 부른 돼지이기를 "오늘 중으로 마감하세요." "이렇게 원고량이 많은 걸 어떻게 마칩니까?" "애초 기일도 못댈 원고를 왜 붙잡고만 있습니까?" 몰아세우며 업신여기는 나쁜 버릇, 고쳐야 할 텐데. 그래도 상대가 시비조로 나오면 고분고분할 수 없다. 언성을 높이고 채근하기 전에는 매진하지 않는 산만함이 .. 不平則鳴 2010.01.06
아침에 잠시 걸음을 떼다말고 멈췄다. 출근중이지만 어차피 시간이야 넉넉하다. 몸에 배인 습관 때문에 서둘렀을 뿐. 굳이 다른 이유를 들자면, 아까부터 뒤를 따라오는 신경질적인 하이힐 소리가 거슬린다. 소리는 바닥에서 콩콩거리다가 급기야 하늘을 요란스레 두드리기도 한다. 눈이 내릴려나. .. 不平則鳴 2009.12.23
머나먼 길 남은 생을 시골에서 보내겠다고 내려간 선배에게서 전갈이 왔다. 전원주택을 아담하게 지었다는데. 그 뒤, 다녀가라는 요청이 몇 번 있었건만 차일피일 날만 넘겼다. 마음 먹으면 나설 수 있는 길, 그걸 막는 사연이 주절주절 만리장성이다. 심지어는 근방을 지나치면서도 기껏 전화 한통.. 不平則鳴 2009.12.16
길이 없어도 나는 간다 난데없이 지하철 플랫홈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 꼬이고 풀어졌다가 오르내리는 궤적을 따라 눈길이 움직인다. 어떤 이는 흥미로워하고 어떤 이는 무심하며 또 다른 이는 아찔하다. 꽃 향기라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지하 수십 미터 공동에서의 원행이라니. 무심한 날개짓이 이어진다. .. 不平則鳴 2009.12.10
먹고 사는 일 개인적 일로 사무실에 행차한 우 모님. 오랜만에 정담도 주고받고, 주변 사람들 근황을 되뇌인다. 함께 간 이곳저곳 길도 겹쳐보며 생각을 궁글린다. 슬쩍 트집을 잡자면, '다시 한 번 떠납시다.'가 마땅한데, 서늘한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더니 불쑥 던진다. "술 한잔 합세다." "엥, 차는 어.. 不平則鳴 2009.12.08
길에서 박무가 군데군데 몸을 일으켜 휘청이는 밤거리. 가로등 뿌연 불빛 아래서 택시들이 털털거리며 기웃한다. 방금 술집에서 한둘씩 쫓아나온 우리 일행은 목청을 높여 기고만장이다. 술이 오를 대로 올라서, 지나던 사람들조차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해간다. 다음 일정을 떠올리며 나는 .. 不平則鳴 2009.12.04
남자로 살아 남는 법 볼일로 역에 나갔다가 여기저기 주저앉은 노숙자들과 맞닥뜨린다. 측은도 하지.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두커니 눈길을 준다. 텁수룩한 차림새와 꾀죄죄한 몰골, 퀭한 눈과 의욕 잃은 몸짓 들을 어이 할까. 천덕꾸러기가 산재한 세상.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래도 살아 있기.. 不平則鳴 2009.11.26
별을 보며 한며칠 영하권에서 맴돌던 기온. 단단히 여미고 차려 입었어도 춥다. 싸아한 기운이 숨쉴 때마다 폐를 자극하여 쿨럭거린다. 또한, 귀가 시렵더니 귓볼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새벽녘이라 더욱 견디기 어려운 건가. 정신이 얼얼할 정도이니.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려다.. 不平則鳴 2009.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