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꿈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바닥을 휘젓는 소음. 낙엽이 병아리 떼처럼 일어나 자동차를 따라 종종걸음치다가 제풀에 주저앉는다. 여기 어디쯤이지 않을까? 약속장소로 가는 중에 방향을 잃어 엉거주춤 서 있을 때 비니를 눌러 쓴 긴 머리 소녀가 다가들었다. "지구종말에 대해 알려 드릴 게 .. 不平則鳴 2009.11.17
그대, 오늘은 안녕한가 나무꾼은 심호흡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다. 사슴의 얘기를 들으며 설마한 게 사실일 줄이야. 삐죽삐죽한 산정 위로 보름달이 훌쩍 솟아 있었다. 교교한 달빛이 산의 속살을 뒤지는 중에 바위 아래 자리한 웅숭깊은 옥담, 그 안에서 빙기옥골의 나신들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저마다 물장.. 不平則鳴 2009.11.13
또 다른 걸음 태생적으로 정착할 줄 모르는 빛. 그래도 생명의 근원이 거기라고 태양이 빛을 뿌리는 방향으로 쉴새없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땅. 어둠이 물러나기 전이라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듯한 숲에서 나무 사이를 떠돌거나 촉촉한 수피를 더듬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안개가 꼬물거리.. 不平則鳴 2009.11.06
마음 가듯 냉장고 문짝에 더덕더덕 붙은 포스트잇들. 하루이틀 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삐뚝빼뚤한 아내 글씨로 잔뜩 씌어 있다. 빨간 줄이 쳐진 전화번호나 날짜, 시각 메모에 아이에게 당부하는 전언이나 과제도 보인다. 마시던 우유 넣어 두지 말 것. 시답잖은 T.V 프로그램 시청 말그라이. 아이 방은 벽 여기저.. 不平則鳴 2009.10.30
가을 맴돌이 화창한 가을, 사색보다는 활동이 좋은 때이다. 손 차양을 하고서는 길에서 길을 더듬는 이들마다 절로 감탄한다. 역시 우리나라 가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해. 금빛 물결로 출렁이는 이 들녘이야말로 르노와르에게 맡겨야 제격일걸. 인상파 화가 손에서 재현되는 결실과 풍요의 아.. 不平則鳴 2009.10.20
산에서 산을 묻다 어릴 적 혼자 집을 지키던 때가 생각난다.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고 힐끔힐끔 돌아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기억. 귀 기울이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벽을 쏠거나 나무가 걸어다니고 빗자루가 일어설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뒤통수가 섬쩍지근하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로 휴일날마다 주어지는 .. 不平則鳴 2009.10.15
서툰 가을맞이 익숙치 않은 수다가 계속 이어진다. 사무실에서 그러고 있으려니 주변에 신경이 쓰여 나중에는 이마가 뜨끈하다. 이넘 가시나가 목소리는 왜 이리 커? 짧은 응대만 하려고 해도 그럴 수 있어야지. 다들 무심한 척하고선 쫑긋하는 모습. 옆에 소근거리겠지. 저 사람이 이른 시각부터 웬일이람. 그러거나.. 不平則鳴 2009.10.13
경계 없는 선 장롱 안에 숨 죽이고 있던 어머니의 남빛 공단 치마저고리. 그 옷감처럼 푸르고 평온하던 지난 봄날 바다. 치즈가 녹아내리듯 양광이 넘쳐 흘렀다. 미동도 않는 물결 위에서 고깃배도 어쩌지 못해 정지한 풍경을 떠올렸는데. 동료들과 어울려 떠들썩하니 퍼붓던 어젯밤 술자리는 숙소인 쏠비치까지 이.. 不平則鳴 2009.10.07
사과이고 싶던 기억 눈을 뜨자 몰입해 있던 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익숙한 자리에서 친숙한 얼굴과 웃던 방금 전까지의 기억은 왜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말하고 실행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둠이 대수인가. 소리내지 말고 걸을 것. 조심스레 문을 연다. 맨발에 닿는 딱딱한 감촉도 좋다. 거실을 지나 미약한 진동을 따.. 不平則鳴 2009.09.29
길에서 철들기 전부터 동경하던 도시로 너도나도 쫓아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갈무리할 수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고향이라는 이름의 자리에는 죄다 연세 든 분들만 남았다. 노인천국이라기엔 격이 맞지 않지만. 붙여 먹고 살 땅이라도 있다면 매이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 不平則鳴 200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