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소식 그대 맞으러 나가 서성인 저녁 길마다 궂은비 긋고 찬바람이 기승을 부렸다 괜스레 발 동동거리며 끓이는 애간장..... 뒤척이며 빗소리와 기침으로 새벽녘에야 까무룩 잦아들었는데 눈뜬 아침 이불깃에 던져진 햇살 한 조각 성큼 열린 아침이 낯설어 새우눈으로 뜨락에 서있는데 발바닥.. 햇빛마당 2016.04.04
봄맞이 텁텁한 막걸리 한 통이면 족하다. 이제 독한, 막된 살이는 그만. 순하게 살자. 아암, 줄여야지. 그래도 아직 멀었어. 날마다 빠뜨리지 않고 술병을 꿰차고 올라오는 게 못마땅하다. 눈 흘기며 쏘는 지청구를 한 귀로 흘리고 딴전 핀다. "아무래도 중독이지요!" "그 정도라면 마실 엄두도 못.. 햇빛마당 2016.03.18
봄비 오는 밤 끼닛거리가 간당간당해도 아랑곳없는 아버지. 오늘은 손님과 더불어 오셨다. 양은주전자를 딸랑거리며 점빵으로 달려가는 것은 으례 내몫. 백열등이 흔들렸다. 담요에 아랫도리를 파묻은 점빵 강씨댁이 고갯짓으로 가리키는 바닥. 아구리만 삐져나온 독 뚜껑을 열자 시큼한 술 냄새가 .. 햇빛마당 2016.03.04
귀 향 눈밭을 지친 메마른 바람은 냉기를 품어 맨살이 아렸다.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저절로 등을 떼밀려 간다. 여기는 사시사철 바람만 드센 자리. 앞쪽 언덕배기에 흙먼지가 일었다. 이 황량한 길을 가며 오래 전 살던 집을 떠올리다니. 이상하게도 집은 늘 비어있었다. 나무대문을 삐걱이.. 햇빛마당 2016.02.11
시냇가에서 '창석이 아재라니?' 어느 때 시골 친척들이 모두 성내에 들어온 다음 다니러 가지 못했다. 먼 친척이라지만 한 동네서 이어지던 때와 달라 오가지 않으면 남이다. 퇴근하자 말자 달려갔는데 아재는 벌써 집에 와 있다. 기억할 수도 없는 지난 얘기가 늙수그레하니 주름잡힌 입에서 줄줄 쫓.. 햇빛마당 2014.11.21
가을비 일용할 빵 같은 가을 오후 햇살을 꿈꾸기는 글렀다. 종일 뜨문뜨문한 비에 누덕누덕해진 심사. 우중 한숨소리를 들었다. 못들은 척 신발끈을 매고 일어서려는데, 미닫이문이 열리다가는 도로 '탁' 닫혔다. 대청 끝에 내려놓은 가방끈을 어림으로 만지작거리다가는 불끈 잡아 쥐었다. 댓돌.. 햇빛마당 2014.11.11
하늘 그리운 나무 미국 캘리포니아주 훔볼트 레드우드 공원에 있는 세쿼이아 셈퍼비렌스는 그야말로 하늘에 닿아 있다 무려 오 미터가 넘는 나무 주위를 탑돌이하듯 도는데 그리움이 환한 달로 솟았다 눈앞에 네가 있는 것처럼 마음속이 촉촉해졌다 Michele Mclaughlin, Just Because 햇빛마당 2014.05.26
새야 날자 분주하게 몰려다니는 사람들. 때로 달려드는 이를 막기 위해 손을 가슴으로 모아 웅크린 채 버티기도 한다.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가 벅차다. 더러는 비켜가고, 더러는 부딪치며 사라진다. '다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글쎄요.' 열정적이어야 한다. 헌데 그런 적 있었던가. 늘 건성으로 지.. 햇빛마당 2014.03.19
나 혼자만이 '제임스 코번과 로드 스타이거가 나오는 '석양의 갱들', 오늘 어때?' 등을 쿡 찌르는 준우 목소리가 들떠있다. 그렇찮아도 영화 포스터 앞에서 회가 동한 판인데. 007 시리즈나 서부영화가 들어오면 누구보다 먼저 쫓아가는 준우와 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집에 와 옷을 갈아입고, 적당.. 햇빛마당 2014.02.12
가을 테 털퍽 엎어진 햇살이 달구는 오후. 그래도 견딜 만하다, 인제 뜨겁지 않아.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는 기분으로 들길을 자분자분 걸었다. 저만큼 주저앉은 산이나 두 손바닥을 펼쳐야 가려지는 바다도 그대로여서, 걸을수록 우리는 댕구알버섯처럼 작아졌다. 쑥부쟁이라든지 선씀바귀가 여.. 햇빛마당 201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