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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에

사이트에 들어가면 본인인증 이외에 필요한 것이 닉네임이다. 닉네임은 이름 외 자기를 기억하게 하고, 알릴 수 있는 또다른 간판이다. 그러기에 약간 익살스러운 이름도 있는가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위인 이름을 따오기도 한다. 동물이나 꽃 이름도 널리 쓰이는 추세이다. 헌데 부르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름은 아예 닉네임으로 못쓰도록 막아 놓은 곳도 있다. 장례식장에 방문한 누군가의 닉네임이 '저승사자'였다는 우스개도 있다. 아는 이의 닉네임이 '에아콘'이나 '나폴레용' 처럼 약간 비튼 이름도 보인다. '엉, 왜 철자가 우리가 아는 이름과 틀리지.' 하며 갸우뚱하다가도 '아마도 거기 거의 동일한 이름이 있기에 순간적인 위트로 바꾸지 않았을까.' 하며 끄덕이기도 한다. 하다보니 내 닉네임도 서너 개 있다. 이것저..

不平則鳴 2021.12.12

통 증

손 닿지 않는 등쪽이 왜 이렇게 가려울까. 어쩌다 그렇다면 넘어가겠는데, 같은 자리에 심이 박힌 것처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가려움. 가제트처럼 팔을 벋고 몸을 비틀어 긁다가는 아이를 불렀다. "어떻냐?" "멍도 들고, 상처도 있는데. 상처는 긁어서 생긴 것 같아요." "그래? 멍이 왜 들었을까." 헌데 놀랄 일이 또 생겼다. 무심코 젖가슴 아래 통증을 느끼고는 쓰다듬다가 살펴보니 앞쪽에도 멍이 들어 있다. 이건 또 뭐야? 앞뒤로 같은 부위가 이렇게 아프다니. 한밤중에 일어났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이 묘한 통증은 뭘까. 가슴 안에 누군가 들어가 장난질을 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증상이 잦다. 가만, 심장이. 아냐, 오른쪽이니 그럴 리도 없고. 어떻든 뭔가 관통한 듯한 돌연한 멍 자국에다가 속에는 날카로운..

不平則鳴 2021.12.10

겨울 예감

누군가를 미워하기. 미워하기 시작하면 마음속 날이 세워져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속이 좁았나,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을 정도라니. 어이가 없어 자책하다가도 끝내 이를 갈았다. 표적을 정하고 미워하는 저주를 날리는 것은 나에 대한 폐단이며 영혼을 갉아먹는, 죽어야만 끊어질 수 있는 나쁜 행태이다. 모임에서 우연히 짝이 된 후배가 있었다. 단지 나와 이어졌을 뿐이지 별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관계가 중요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별도로 이야기를 나눌 만한 계제도 없다. 모임을 파하고 돌아온 다음에 맡겨 둔 내 소유물이 생각났다. 문자로 '나중 기회가 되면 그걸 달라' 고 요청했는데, 며칠간 아무 대꾸 없더니 전혀 모르는 이처럼 문자를 보낸다. '기억이 없으니 문자를 보내지 말라'고. 중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不平則鳴 2021.12.05

찬바람이 불면

찬바람이 불면 걱정스럽다. 왜냐, 기침을 달고 살아야 하니까. 혹여 누군가 함께 있으면 염려스럽다. .어느 순간 '쿨럭'대기 시작하면 잠깐일지, 아니면 한참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끓임없는 기침으로 기진맥진할 때까지 나아갈 지도 모를 일. 대체 왜 이럴까. 추위에 대한 방어기제가 있어 필연코 맞닥뜨릴 겨울에 대한 준비를 몸이 알아서 미리 작동시켜야만 하는걸까. 내가 기침으로 겨울을 준비하듯 누군가는 손발이 싸늘할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안면근육이 뻣뻣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 겨울 터널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고서는 햇빛 환한 마당에서 우리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The Corrs, Ruby Tuesday(Live)

不平則鳴 2021.12.02

함께 걸어갈 길 앞에서

- 요즘 제가 불면증이 심합니다. 하루이틀 날밤을 새는 건 예사이고, 얼마 전에는 삼일 밤낮을 꼬박 샌 적도 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지 싶어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지' 하며 자리를 깔고 누운 찰나 아이들이 왔습니다. 함께 나가 피부샵에도 들르고, 머리 염색도 하고, 목욕하고 이발도 했습니다. 이렇게 호박에 줄이라도 치면 새 신랑처럼 훤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 여자이름인 남자 **이와 남자이름인 여자 **이가 오래도록 이어온 귀한 만남 끝에 결혼하는 날입니다. 사실 두 사람이 허락을 구할 때부터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하필 코로나로 제약이 심한 이때 결혼을 해야 돼? 하구요. 애써 위안도 가집니다. 비혼주의자들이 넘치는 판국에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겠다는 뜨거운 열정과 위대한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도 싶습니..

햇빛마당 2021.11.14

문경새재 오르는 길

너나 없이 갇혔다. 셋이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눈총을 받았다. 커피라도 한잔하려고 들어가면 방문등록부터 해야 하니. 그래도 가을은 소리소문 없이 자리잡았다. 혼자 산기슭을 오르는데 '톡'이 들어온다. '오늘 혼자 문경세재에 왔쑤. 근데 헐, 대박!' '호젓하니 좋겠네요. 어떤 일이 그리 즐겁게 하오?' '여그 삼관문 휴게소 아줌마가 날 알아보네. 가죽나물부침개도 입에 쫘악~ 달라붙고.' 십년은 되지 않았을까. 장 소장과 둘이 문경세재에 간 적 있다. 초여름 사과꽃이 피었다. 양봉벌이 없는지, 부지런한 농부가 과수원에서 일일이 인공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있었다. 점심때도 지나 쉬엄쉬엄 오른 발걸음에 무언가 아쉽다. 삼관문에서 술을 한잔 기울이다가 넌지시 던졌다. "여기서 자고 내일 갑시다." "그럼 나도 자..

不平則鳴 2021.11.08

여 정

질 주피곤에 절었어도한낮 가을 햇살 헤집어꿈을 꾸게 하나니지친 영혼 일으켜 숲길로 들어섰다내내 친구처럼 촐랑대는 물소리밤새 재촉한 바쁜 걸음 덕분에남은 길 멀지 않아어스름 빛에겉과 속, 안팎과 삶과 죽음이 어울려 하나로 돌아간다겨울 또한 금방이겠어탐 색흔들리는 바람 속어지러운 날갯짓부전나비 한 마리갈꽃 찾아 헤매다쑥부쟁이 속에 숨었다채 못자란 몸을 다스릴자양분이라도 얻었을까Celtic Spirit, White Water

不平則鳴 2021.10.25

옷이 날개라고

퇴근해 들어온 아이. '덥다, 더워!'를 연발하며 바깥에서 묻힌 텁텁함을 손사위로 털어낸다. 더위에 지친 탓일까. 체념우선인 어투 끝에 샤워부터 하고 나온 다음 팬티 바람으로 나대는 아이. 여기저기 벗어 놓은 옷이야 치우겠지 싶은 바람도 공염불이다. 다 큰 녀석에게 매번 잔소리를 할 수 없지만. "야, 임마. 그게 뭐냐?" "참나,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이게 네 집이냐?" "적을 두고 보금자리로 삼으면 그게 제 집이지, 남의 집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보기 흉해. 옷도 잘 벗어야 예술이지, 잘 못벗으면 외설스러운 것 알지! 잠시 뒤 동생이 들를지 모르니 아무 거라도 걸치고 있어!" 여름이야 더워서 그러려니 하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빵빵한 난방으로 벗은 채 가뿐하게 생활하니, ..

不平則鳴 202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