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061

악질 소굴

"의외로 많이 지체되었네. 약속 시각에 빠듯하게 닿겠어." "그 근방에 주차할 곳이 있어야 할텐데."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뭉게구름이 선명한 서쪽 하늘이 볼 만해 시선을 두고 있다. 그 순간 옆에서 후욱 치고 들어온 오토바이. 전방을 주시하던 친구가 기함한다.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출렁거렸다. 마침 앞쪽 신호가 바뀌었다. 늘어선 차들 옆에 주춤거리고 선 오토바이 옆에 바짝 다가갔다. "오냐, 너 잘 걸렸다. 이 시끼." 차창을 내린 친구가 소리친다. "야 임마, 그딴 식으로 운행할래? 사고 나면 어떡할거냐." 괄괄한 성격을 숨기지 못하고 씩씩대는 친구 서슬에 횡단보도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기웃거린다. 친구가 얼굴이 달아오르도록 마구 소리쳤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있던 젊은 친구가 고개를 꾸벅 조아렸다. ..

不平則鳴 2021.08.17

A.W.Ketelbey, In a Persian Market

앞장선 친구를 따라 우리는 종종걸음을 쳤다. 북새통인 시장 바닥. 요리조리 빠져나가기가 서커스를 하는 듯하다. 사람들의 아우성과 먹음직한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장터 한귀퉁이 식당에 우리는 한줄에 꿰인 북어마냥 들어가 옹기종기 앉았다. 우리를 이끈 친구가 주방에 고함으로 주문하자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두부찌개가 쫓아나왔다. 사람 수대로 털컥털컥 놓인 밥그릇을 제각각 들고 숟가락질을 시작한 찰나 깜짝 놀랐다. 새삼 입맛을 쩝쩝 다셨다. 오홋, 이 맛! 기억난다. 대파를 쑹쑹 썰어넣고, 굵은 멸치로 다시를 우리며 간조림만으로 두터운 두부를 커다랗게 익힌 찌개맛. 전쟁을 치르듯 숟가락이 오간 다음 금방 바닥을 보인 넓다란 찌개 냄비를 다들 아쉬운 듯 바라보았다. "이야, 어릴 적 먹던 바로 그 찌개 맛이구..

思索一音 2021.08.07

지금 이대로

저 초록 숲을 건너 검푸른 바다가 나올 때까지, 가자 잠결에 울리는 전화. 무심코 손을 뻗어 화면에 눈을 두다가는 끊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잖아. 운전중에 전화기가 울리기에 화면을 조작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세요'라고. 두어 달 뒤 우연히 스마트폰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몇 번이나 받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달라'는 답신으로 남은 전화번호라니. 누구지? 계면쩍지만 가로늦게 문자를 보냈다. '대체 누구십니까?' 잊을 만할 때쯤 '누구 아니시냐?'고. 명기된 메시지를 보았다. 그 뒤에 스스로를 밝히는 메시지가 없어 아쉽다. 궁금증이 증폭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은 걸려오는 스팸전화에다가 바쁜 일과로 지나쳤다. 그리고 뜨거운 오후 나절,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명멸하는 햇살로 눈을 바로 뜨기 어려운..

不平則鳴 2021.07.23

Joaquín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for Guitar&Orchestra

Joaquín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for Guitar&Orchestra(II. Adagio) 1902년 태어난 Joaquín Rodrigo는 세살 때 시력을 잃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여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파리에서 콘서바토리와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했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난 이후에 돌아왔지만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 때 아랑훼즈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내놓았는데, 기타리스트 Regino Sainz de la Maza(1896~1981)의 제안으로 작곡한 곡이었고,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마드리드를 벗어나 톨레도 가는 길에 있는 'Aranjuez'는 부르봉 왕가가 머물던 여름 별장 궁전으로, 유네스코 지..

思索一音 2021.07.21

C.M.Von Weber, Was Gleicht Wohl Auf Erden

C. M. Von Weber(1786~1826) Der Freischütz, (Act III) Chor Der Jäger Was Gleicht Wohl Auf Erden(세상에 사냥처럼 즐거운 일은 없어) - 제3막 숲속 사격 대회장, 사냥꾼들이 모여서 신 나게 '사냥꾼의 합창'을 노래한다. '세상에 사냥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어' (Was gleicht wohl auf Erden dem Jaegervergnuegen?)는 보헤미아 사냥꾼들의 생활과 기분이 잘 드러나는 남성 합창곡이다. 활발하고 씩씩한 느낌이 풍기는 이 곡은 사냥에서 느끼는 기쁨을 노래하며, 들판과 숲속을 달리면서 짐승을 쫓는 왕자의 기쁨, 남자들의 보람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탄의 사수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으로, 독일적인..

思索一音 2021.07.19

Luciano Pavarotti, Funiculi-funiculá

산을 일고여덟 개는 넘었어. 지치고 늘어진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을 때 초록 숲 안쪽에서 보았어. 그 누구도 찾지 않았지만 '감자난초'는 홀로 빛나는 자태를 보였다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Funiculi Funicula'는 밝고, 활기찬 나폴리 노래이다. 작사는 당시 나폴리 신문기자로서 명성이 있던 '주제페 투르고', 작곡은 'Luigi Denza'이다.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 중간 나폴리와 폼페이 사이에 있는 베수비오 산은 서기 79년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사실이 잊혀질 즈음인 1880년, 나폴리 시에서는 베수비오 화산에 케이블카를 설치 개통하였다. 그럼에도 화산 폭발이 두려운 사람들이 겁을 내 전혀 이용하지 않으므로, 케이블카를 설치한 '코머스 쿡'이 안을 냈..

思索一音 2021.07.14

일상은 어디서나

"한참 더운데 이번 주말에 바람이나 쐬러 가자?" "뜬금없이 바람이라니, 누구와 어디서?" "그냥 우리 모임이지. 토달지 말고 시간, 장소 일러줄테니 빠지면 안돼!" "준비물이라든지 각자 챙겨야 하는 것이라도 있겠지?" "한두 해 본 사이야? 한꺼번에 준비하고 나중 일정하게 나눌테니 몸만 나와." 그렇게 해서 본의 아니게 해가 쨍쨍한 휴일, 유흥을 떠나게 되었다. 연천 어디쯤으로. "자, 신 나게 달려보자고. 오늘 운전은 내가 봉사할게. 모두의 즐거운 하루를 위하여!" N이 승합차 운전대를 잡았다. 금방 흥겨운 트롯 메들리가 오디오에서 줄줄이 쫓아나왔다. 쭉 벋은 자유로를 달려갈 때 소풍 가는 병아리마냥 떼창도 더러 이어진다. 눈을 시리게 만드는 차창 밖 푸른 초목이 눈앞으로 달려왔다가 뒤로 휙휙 사라졌..

不平則鳴 2021.06.23

동백여인숙에서

꽃 구경이라도 할랬더니 '이월이는 냉랭하고, 삼월이는 지날 때마다 찬바람 불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월이야말로 내게 따악이지만 저 바쁜 일로 마주칠 일도 없으니. 그렇다고 푸근한 오월이라도 보려니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 여인숙 쥔장, 내 말 듣더니 혀를 찬다. - 다아 씨잘데기 없고만이라...... 이래저래 어지러운 심사 술로 매조질 수밖에. '밥의 미학'을 부르짖던 임지호씨 영전에 Kris Baines, To Have And To Hold

不平則鳴 2021.06.13

아우성

"앱 하나 찾아서 깔아줘." "신상을 하나 봐왔는데 해외직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아이디 비번을 또 바꾸라네. 이번엔 뭐로 해야 할까?" "이건 왜 이래, 저건 또 뭐지?" 결국 뾰족한 아이 음성이 뒤따른다. "제발 엄마, 꼭 필요한 것만 물어봐줘." 살 날이 아득하다. 살아온 날의 내공만으로 알 만해야 할텐데, 낯선 것뿐이니. 그래서 사는 일이 점점 어렵다. 그런데 아이들은 종이 다른 걸까. 배우지 않아도 몸에 밴 것처럼 척척 알아서 나아가다니. 어른들이 길을 제시한다는 말도 옛말이다. 일일이 아이들한테 물어서 해결해야 하니.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봄'을 거듭 들으며 은밀히 새기던 봄은 이미 없다. 햇빛사냥을 하며 저희끼리 와글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바뀐 게 확실하다. ..

不平則鳴 2021.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