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가을맞이 익숙치 않은 수다가 계속 이어진다. 사무실에서 그러고 있으려니 주변에 신경이 쓰여 나중에는 이마가 뜨끈하다. 이넘 가시나가 목소리는 왜 이리 커? 짧은 응대만 하려고 해도 그럴 수 있어야지. 다들 무심한 척하고선 쫑긋하는 모습. 옆에 소근거리겠지. 저 사람이 이른 시각부터 웬일이람. 그러거나.. 不平則鳴 2009.10.13
경계 없는 선 장롱 안에 숨 죽이고 있던 어머니의 남빛 공단 치마저고리. 그 옷감처럼 푸르고 평온하던 지난 봄날 바다. 치즈가 녹아내리듯 양광이 넘쳐 흘렀다. 미동도 않는 물결 위에서 고깃배도 어쩌지 못해 정지한 풍경을 떠올렸는데. 동료들과 어울려 떠들썩하니 퍼붓던 어젯밤 술자리는 숙소인 쏠비치까지 이.. 不平則鳴 2009.10.07
사과이고 싶던 기억 눈을 뜨자 몰입해 있던 꿈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익숙한 자리에서 친숙한 얼굴과 웃던 방금 전까지의 기억은 왜 다시 떠오르지 않을까. 말하고 실행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둠이 대수인가. 소리내지 말고 걸을 것. 조심스레 문을 연다. 맨발에 닿는 딱딱한 감촉도 좋다. 거실을 지나 미약한 진동을 따.. 不平則鳴 2009.09.29
길에서 철들기 전부터 동경하던 도시로 너도나도 쫓아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갈무리할 수 있어야지. 어쩔 수 없이 고향이라는 이름의 자리에는 죄다 연세 든 분들만 남았다. 노인천국이라기엔 격이 맞지 않지만. 붙여 먹고 살 땅이라도 있다면 매이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은 .. 不平則鳴 2009.09.18
가려움이란 늦더위에 잦아들던 매미소리가 다시 커지고, 살이의 소명을 다한 암수 고추잠자리의 느긋한 짝짓기비행이 눈에 띈다. 아열대화로 점차 잰걸음한다느니 따위의 소식에 내둘리지 않더라도 아직은 반팔옷이 어울리는 즈음. 무심코 팔 등 맨살을 긁는다. 자극이 가면 잠복해 있던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인.. 不平則鳴 2009.09.14
이 여름, 저 가을 자글거리는 초가을 볕이 저만큼 앞 아주머니가 받혀 든 꽃 무늬 양산 위에서 튄다. 어떻게 저러고선 나설 생각을 했을까? 옆에서 혀를 찬다. 아침저녁으로는 선득할 정도이고, 낮엔 양철통 안처럼 달궈진다. 간편한 겉옷을 벗어 팔에 걸었는데, 등짝이 패인 윈피스 때문에 허리 바로 위까지 골이 내려.. 不平則鳴 2009.09.08
창 밖으로 늘상 보는 풍경은 아다지오Adagio여서 마음에 담기지 않았다. 아침마다 이용하는 지하철, 일부 구간이 지상에 드러나 있어 쫓아나올 때마다 발가벗긴 것처럼 안팎이 밝아진다. 큰 산 뒤편이 붉으스레하게 물드는 동녘과 미적거리는 해와 미처 숨지 못하고 창백하게 부서지는 중천의 달. 여름 내 산야를 .. 햇빛마당 2009.09.01
열려라 참깨! 행동이 굼뜨면 생각마저 모자라는 것처럼 비친다. 몽상에 빠져 있는데 문이 왈칵 열렸다. 야가 뭔 생각을 구래 하노? 몇 번을 불러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하달되는 심부름. 혼자만의 생각에서 미처 깨나지 못해 미적거리자 꾸지람이 성난 벌떼처럼 달려든다. 얼릉 일어나 가잖고 뭐하노? 어깨도 좀 .. 不平則鳴 2009.08.26
길로 광안리에 가 있다는 친구 녀석, 전화기 너머 짭쪼롬한 소금끼가 배어 있다. 주변 소음 때문인지 말이 빨라진다. 휴양 인파로 흥청대는 항구도시가 싫어졌다나. 용호동 뒤편 이기대를 돌아보다가 밤 모기한테 온통 물어뜯겨 근질거린다며 투덜대고, 근방 길목에서 밀리는 차에 갇혀선 한 시간여나 걸려.. 不平則鳴 2009.08.19
따로 또 따로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에요? 느닷없이 뾰족하게 찌르는 바람에 말문이 막힌다. 빈둥거리는 것처럼 비쳤는가.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궁리하느라 바빴는데 말야. 던지는 말이 일반적이다 못해 막연하지만 농담처럼 받아서는 안되겠지. 대저 저 사람이 나열하는 내 단점이 뭐더라?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 햇빛마당 200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