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박무가 군데군데 몸을 일으켜 휘청이는 밤거리. 가로등 뿌연 불빛 아래서 택시들이 털털거리며 기웃한다. 방금 술집에서 한둘씩 쫓아나온 우리 일행은 목청을 높여 기고만장이다. 술이 오를 대로 올라서, 지나던 사람들조차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피해간다. 다음 일정을 떠올리며 나는 .. 不平則鳴 2009.12.04
남자로 살아 남는 법 볼일로 역에 나갔다가 여기저기 주저앉은 노숙자들과 맞닥뜨린다. 측은도 하지. 남의 일 같지 않아 우두커니 눈길을 준다. 텁수룩한 차림새와 꾀죄죄한 몰골, 퀭한 눈과 의욕 잃은 몸짓 들을 어이 할까. 천덕꾸러기가 산재한 세상.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그래도 살아 있기.. 不平則鳴 2009.11.26
별을 보며 한며칠 영하권에서 맴돌던 기온. 단단히 여미고 차려 입었어도 춥다. 싸아한 기운이 숨쉴 때마다 폐를 자극하여 쿨럭거린다. 또한, 귀가 시렵더니 귓볼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새벽녘이라 더욱 견디기 어려운 건가. 정신이 얼얼할 정도이니.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려다.. 不平則鳴 2009.11.23
달콤한 꿈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바닥을 휘젓는 소음. 낙엽이 병아리 떼처럼 일어나 자동차를 따라 종종걸음치다가 제풀에 주저앉는다. 여기 어디쯤이지 않을까? 약속장소로 가는 중에 방향을 잃어 엉거주춤 서 있을 때 비니를 눌러 쓴 긴 머리 소녀가 다가들었다. "지구종말에 대해 알려 드릴 게 .. 不平則鳴 2009.11.17
그대, 오늘은 안녕한가 나무꾼은 심호흡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다. 사슴의 얘기를 들으며 설마한 게 사실일 줄이야. 삐죽삐죽한 산정 위로 보름달이 훌쩍 솟아 있었다. 교교한 달빛이 산의 속살을 뒤지는 중에 바위 아래 자리한 웅숭깊은 옥담, 그 안에서 빙기옥골의 나신들이 까르르 소리를 내며 저마다 물장.. 不平則鳴 2009.11.13
또 다른 걸음 태생적으로 정착할 줄 모르는 빛. 그래도 생명의 근원이 거기라고 태양이 빛을 뿌리는 방향으로 쉴새없이 공회전을 거듭하는 땅. 어둠이 물러나기 전이라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듯한 숲에서 나무 사이를 떠돌거나 촉촉한 수피를 더듬으며 그렇게 서 있었다. 안개가 꼬물거리.. 不平則鳴 2009.11.06
마음 가듯 냉장고 문짝에 더덕더덕 붙은 포스트잇들. 하루이틀 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삐뚝빼뚤한 아내 글씨로 잔뜩 씌어 있다. 빨간 줄이 쳐진 전화번호나 날짜, 시각 메모에 아이에게 당부하는 전언이나 과제도 보인다. 마시던 우유 넣어 두지 말 것. 시답잖은 T.V 프로그램 시청 말그라이. 아이 방은 벽 여기저.. 不平則鳴 2009.10.30
원조 가위손 거울에 빤히 비치는 이발소 안 풍경. 대기의자에 줄줄이 앉은 아이들은 좀이 쑤신다. 입이 찢어지게 연신 하품을 하거나 코를 파내거나 껌을 씹거나 졸고 있는 녀석들 생각은 오직 하나, 어서 순번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고개를 디미는 영복이 엄마, 북적이는 안을 .. 發憤抒情 2009.10.22
가을 맴돌이 화창한 가을, 사색보다는 활동이 좋은 때이다. 손 차양을 하고서는 길에서 길을 더듬는 이들마다 절로 감탄한다. 역시 우리나라 가을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훌륭해. 금빛 물결로 출렁이는 이 들녘이야말로 르노와르에게 맡겨야 제격일걸. 인상파 화가 손에서 재현되는 결실과 풍요의 아.. 不平則鳴 2009.10.20
산에서 산을 묻다 어릴 적 혼자 집을 지키던 때가 생각난다. 누군가 있는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고 힐끔힐끔 돌아보며 머리를 긁적이던 기억. 귀 기울이면 보이지 않는 뭔가가 벽을 쏠거나 나무가 걸어다니고 빗자루가 일어설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뒤통수가 섬쩍지근하다. 아닌 밤 중에 홍두깨로 휴일날마다 주어지는 .. 不平則鳴 200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