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목련에 붙여서 우울한 건 왜인가. 견디기 어려운 게 무언가. 가라앉아 있는 텁텁함도 그렇지만 왜 바람마저 통하지 않을까. 창이라도 열어야지. 환기를 하려는데, 바닥에서 알루미늄 샷시 긁히는 소리가 유난스럽다. 시선을 바깥쪽에 두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어랏, 저 이가 여긴 왠일일.. 不平則鳴 2010.11.15
탈색 고비에서 시작한 바람 나흘 밤낮을 휘모리로 으쓱대서는 오늘 초승달까지 덥썩 물었다 몸을 비틀기도 하고 핏줄마다 쥐어짜서는 불순물이라도 탈탈 떨 즈음 숲에서 나오는 너를 보았다 초록물 뺀 까칠한 존재들이라 겹쳐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손만 대면 부숴뜨려지는 살이는 어떻고 거친 서걱임과 .. 不平則鳴 2010.11.11
서먹서먹한 계절 받아들이는 것마다 서먹서먹하게 만드는 냉기. 서리 돋은 흙이 낯설다. 심지어는 벤치마저 이리 이질감이 들도록 딱딱하다. 두서없이 떠올린다. 공원벤치에 홀로 앉아 기다리는 님도 없이 기타 치면서 노래.....한다고 읊조리던, 저음이 매력적이던 가수 홍민. 대중가요 가사도 예사롭지 않다. 어느 때 .. 不平則鳴 2010.11.09
나무 아래서 배웅하는 당신 모습을 안보려고 눈 질끈 감고 걷는다. 대신 어머니가 이고 있던 우람한 나무가 큰 걸음으로 뚜벅뚜벅 뒤따르는 걸 느꼈다. 돌아보지 않을려다가, 당신 손이 끊임없이 나부끼길래 슬쩍 눈을 떴다. 이 눈치 없는 눈물이라니. 바람이 세차지며 이파리란 이파리가 다 일어나 초록 실핏줄이 .. 햇빛마당 2010.11.05
인간적이고 싶은 발을 동동 굴러도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느려터진 자동차. 신호마다 발이 묶이고 길은 그리도 막히는지. 약속 장소는 멀고, 시간만 쏜살처럼 내뺀다. 연신 시계를 쳐다봐도 대책 없으니 이를 어떡하나.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 집을 나서는 건데.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뉘우쳐도, 바짝바짝 타는 입안 침.. 不平則鳴 2010.11.02
그렇게 지나간다 마스크로 가려 눈만 내놓은 칫과의사. 표정이야 모호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팔뚝에 드러나는 힘줄이 보잘것 없어도 그만하면 충분하다. 물경 수십 말의 곡식을 바수고 수 톤의 고기를 거덜냈을 안쪽 장한 어금니를 폐가 흙벽돌 들어내듯 거침없이 꺼낸다. 아찔한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주변을 긁고 .. 햇빛마당 2010.10.29
그대 오시는가 그녀가 온댔지. 삼단같은 머릿물결에 앉아 찰랑대던 햇빛. 웃음을 터뜨리면 억만 년을 견뎌온 동굴 속 종유석을 타고 내린 물 한 방울이 육십이일째 뚝! 떨어져 파동을 만들고 간섭하여 온 동굴을 휘젓던 것처럼 숲을 들뜨게 하던, 그녀가 온단다. 기별하여 작정하고 모였다. 그냥 있음 안되잖여? 그러.. 不平則鳴 2010.10.26
사랑아, 내 사랑아 주렁주렁 달고 있던 호박을 지난 추석 난데없는 물난리에 썩히거나 날려 보내더니, 저놈이 미쳤나. 하루 아침에 꽃을 열두어 송이나 피워낸다. 한편으로는 애닯다. 커다란 잎이 변색하며 오그라드는 통에 식겁하지 않을 수 있어야지. 기온 뚝 떨어진 아침마다 인제는 수정도 못할 꽃을 한다발씩 토해.. 不平則鳴 2010.10.20
45병동 우리 꼬마가 노랑봉지 안에서 꺼낸 가랑코에는 앙증맞은 손을 흔들었다. 가느다란 팔에 띄운 별을 보고 다들 침을 삼켰다. 참, 예쁜 꽃이구나! 하늘의 별이 탁자 위에서 반짝인다. 안타까운 일은 별이 지는 것을 봐야 하는 것. 시름시름 앓는 가랑코에 앞에서 꼬마는 눈물을 글썽인다. 온 힘으로 밀어올.. 不平則鳴 2010.10.16
어두움에 딩굴어 오후 내 뭉그적대는 서점 안. 참고자료를 구할 참이었는데 엉뚱한 책만 뒤적인다. 벌써 서산머리에 해가 뉘엿거릴게다. 그래도 흡족하다. 풍족한 식사 후에 달디 단 후식을 입에 머금은 것처럼 감기는 문장들. 어떤 대목에서는 소리내 읽으며 감탄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는 책먼지. 정수리 안쪽을.. 不平則鳴 201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