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도 여름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려 두었다. 가스렌지 새파란 불길이 생물처럼 파르랑댄다. 맴돌이하던 후끈함이 주변을 덥힌다. 가만히 있어도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 달아올라 덩치가 커진 여름. 강을 지우고 산을 달군 다음 딛고 선 땅마저 푹푹 쪄대는 바람에 질색한다. 대체 인내심을 시험.. 不平則鳴 2013.08.21
before noon, 일상 김연아가 플립 점프 다음 얕은 인엣지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전동차.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와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해졌다. 내앞에서 사정없이 졸던 여자아이가 별안간 눈을 떴다. 두리번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냉큼 나를 밀친다. '잠깐만요!' 앞뒤없이 쫓아나가는 바람.. 不平則鳴 2013.08.13
여름에 부쳐 이른 새벽 시작해 질긴 냉면가락처럼 하염없는 비. 수량이 늘어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계곡 물길. 이를 거슬러 오르는 산길에서 문득 철학자처럼 갸웃거립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꾸덕꾸덕한 날씨 탓일까요. 답 없이 맴돌기만 하는 생각을 떨치듯 걸음을 재촉.. 不平則鳴 2013.08.07
다시 길에 '날이 우예 이리 좋노!' 메마른 바람 부는 이런 날, 엄마는 손바닥 챙을 하고 하늘을 보기 일쑤였다. 옥양목이나 포플린 등의 옷감을 빨간 다라 한가득 담고 치대서는 탈탈 떨고 널어 놓은 다음 대청마루에서의 오훗잠이 달콤하기만 했는데. 갈라진 입술에 침을 묻힌다. 내륙지방 낯선 곳.. 不平則鳴 2013.07.31
따뜻한 섬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나올 때 뜨문뜨문한 비를 맞았다. 역한 휘발유 냄새에 옆 편의점에서 진한 커피라도 한잔 가져오려다가 포기했다. 차창 유리를 올리며 참았던 숨을 들이킨다. 후욱 끼치는 습기 찬 바람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다시 밤처럼 까맣게 되었다. 빗줄기가 굵어졌.. 不平則鳴 2013.07.23
마른 비 애월 바다 물빛 원피스가 잘어울리는 기상캐스터는 오늘도 비 온다는 예보를 한다. 점심을 먹고 오다가 습관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두터운 구름에 덮여 있어도 눈부시다. 밥알을 잘게 씹으며 기상 예보도 씹었다. 기상캐스터의 높고 말간 목소리를 떠올리며 다들 계면쩍게 이마를 훔쳤.. 不平則鳴 2013.07.19
그 품은 소리에 결이 없어 들을수록 짜증스런 소음. 작동중인 세탁기가 '들들'거리는 바람에 하던 말을 끊었다. 바닥이 잘 못 고여진 건지, 의외로 큰 소음이 한참 동안 들이차 불만이지만 딴은 나야말로 시끄러운 축이지 않을까. 고탁치 못한 글줄 하나 써 놓고 뻐기기 일쑤이며, 지난 공적에 대.. 不平則鳴 2013.07.16
그런 시간 장마철 비를 핑게대고 일찍부터 나앉은 술자리. 몇 순배 돌아가자 알콜보다는 후덥지근함으로 정신 없다. 젠장, 이른 시각이라 에어컨도 켜놓지 않았잖아. 버티자니 등줄기가 후줄근하다. 참다 못해 한소리 꺼내려는 상대를 막았다. '이대로 있어봐. 아무려면 큰 탈이야 있을라구.' 의아.. 햇빛마당 2013.07.12
너를 찾아가는 길 제각각의 세상에서 저마다의 색깔로, 소리로 아무리 소통하여도 비비새처럼 울음을 삼키는 건 매한가지. 알아갈수록 호올로 내쳐지는 것도 어쩔 수 없어. 입을 닫고 귀를 막았지. 눈도 감으려는 찰나에 반짝이는 분홍 꽃구름을 보았다. 운동회날 아이들이 부채를 들고 유희를 하듯 담장 .. 不平則鳴 2013.07.08
칠월 문 여기가 백두대간이라지, 칠월 마루금에서 굽어보는 첩첩준령의 물결은 아득하다 신물나는 초록이 곰보빵처럼 부풀어올랐다 배낭을 멘 채 낯선 도시 뒷골목을 헤매었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빵의 하단을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쇼윈도우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창에 어린 종탑을 본다 익.. 不平則鳴 2013.07.02